낙조 명소로 유명하다고 해서 향한 태안 꽃지해수욕장. 하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지는 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좋았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강풍이 불었던 날이지만, 그 풍경도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휘몰아치는 파도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바람을 맞는 동안 묘한 에너지를 경험했다. 부지런한 날갯짓을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갈매기떼처럼, 해변의 강풍 앞에서 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자연은 아름답고도 두려운 대상이다.
이곳의 시그니처인 할미·할아비바위는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해수욕장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던 두 바위에는 사연이 있다.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안면도에 기지를 뒀을 때의 기지사령관인 승언과 아내 미도의 슬픈 전설이 서려있다. 출정 나간 승언이 돌아오지 않자 바다만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던 미도는 죽어 할미바위가, 큰 바위는 할아비바위가 됐다는 전설이다. 썰물 때는 두 바위가 한 몸인 듯 모래톱으로 연결되어 전설의 감동을 더한다.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바위들이지만, 전국에서 꽃지해수욕장으로 관광객이 모이는 이유는 두 바위와 어우러진 낙조 때문이다. 석양이 넘어갈 때 두 바위를 넘어갈 때의 일몰 풍광을 담기 위해서다. 이 장면을 보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뭐, 하늘이 좋은 날 다시 찾으면 되니까.
태안을 찾았으니 게국지를 먹어야만 했다. 서산과 태안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인 게국지는 서울에선 쉽게 찾지도 않는 메뉴다. 본래 게국지는 절인 배추와 무, 무청 등에 게장이나 젓갈국물을 넣어 만든 김치이다. 우리가 먹는 게국지는 꽃게탕 같은 음식이다. 오랜만에 먹은 게국지의 국물은 끝내줬다.
일몰 풍경에 대한 미련이 강하게 남지만, 꽃지해수욕장이라는 아름다운 장소를 가본 것만으로도 좋았던 날. 이름이 예뻐서 찾아봤더니,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 '꽃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