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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하는 서로 다른 시선

영화 '나의 사소한 슬픔' 리뷰

모든 사람은 죽는다. 대개는 이 불변의 진실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날 걸 생각하면 괴롭고 끔찍하니까 떠올리는 것조차 꺼린다. 그러나 살다 보면 죽음에 직면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영화 '나의 사소한 슬픔'은 죽고 싶은 언니 엘프(사라 가돈)와, 그런 언니를 살리고 싶은 동생 욜리(알리슨 필)의 이야기를 그린다. 욜리는 아동 도서를 집필하는 작가다. 결혼생활은 엉망진창이고 재정 상황도 안 좋다. 사춘기 딸과도 전쟁의 연속이다. 엘프는 국제적으로 성공한 피아니스트로, 다정한 남편과 함께 꽤 괜찮은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매는 한동안 완벽한 타인처럼 지내왔다.


자매는 10년 전 자살한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엘프까지 자살을 시도했고, 그로 인해 수년간 묻어뒀던 가족의 슬픔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욜리와 엘프는 죽음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르다. 조건만 놓고 보면 엘프는 극단적 선택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엘프는 늘 마음 속에 '유리로 된 피아노가 놓여있어 괴롭다'고 토로하기 일쑤다. 언니의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욜리는 엘프의 마음을 돌리려 애쓴다. 제발 살아달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엘프는 욜리에게 존엄사를 시행 중인 스위스로 데려가달라는 부탁만 할 뿐이다.


오히려 욜리의 삶이 슬픔 그 자체다. 엘프의 자살 시도로 욜리의 삶에 슬픔이 추가됐다. 그럼에도 욜리는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려 한다. 마치 알랭 드 보통의 책 '슬픔이 주는 기쁨'을 연상케 하는 욜리는 일상의 슬픔에서 예술의 영감을 발굴해낸다. 가족 간의 불화, 죽음 등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인물이다.

오프닝 장면에서의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당연한 사실은 없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실제로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라는 대사는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엘프는 죽고 싶었고 나는 언니가 살기를 원했기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적이었다"라는 욜리의 대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매의 다른 시선과 대립각을 압축한다.



영화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가 미리엄 토우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0년 간격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버지와 언니를 다룬 작품은 놀랍게도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제목 '나의 사소한 슬픔'은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쓴 시구절을 인용했다.


‘나의 사소한 슬픔’은 자매가 서로의 내밀한 슬픔을 이해하는 과정을 현실적인 대사와 섬세한 감정선으로 표현해 공감을 자극한다. 존엄사와 웰다잉이라는 묵직한 소재는 죽음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우리는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욜리 어머니의 대사처럼 온갖 슬픔들이 있을지라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사소한 슬픔'은 2021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벤쿠버 영화비평가협회 최고의 캐나다 영화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시네페스트 서드베리 국제영화제 캐나다 장편상, 캐나다 감독조합감독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등을 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6월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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