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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닐하우스> 리뷰

최악 중의 최악! 이 빌어먹을 세상, 없애버리자.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고, 조여오는 순간도 있었던 영화 <비닐하우스>.



영화는 문정(김서형)의 일상을 찬찬히 따라간다. 문정은 아픈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놓고 생계 유지를 위해 다른 노부부를 간병한다. 버려진 비닐하우스에서 홀로 지내고 있고, 사고를 친 아들은 소년원에 있다. 아들이 출감하면 비닐하우스를 벗어나 함께 살아갈 거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문정은 정신이 아픈 상태다. 이혼에, 사고뭉치 아들에, 아픈 엄마까지. 정신적 결함이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많은 원인 중 하나일테다. 문정은 스스로의 뺨을 때리는 자해를 하곤 한다. 문정은 이 행위가 자해인 줄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정은 노부부를 살뜰히 간병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 태강(양재성), 치매에 걸린 할머니 화옥(신연숙)을 부모 대하는 것 이상으로 정성껏 돌본다. 정작 케어를 받아야 할 사람이 본인임에도 문정은 자신보다 더 악조건에 놓인 이들을 살피고 또 살핀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실낱같은 희망의 날들이 불행으로 뒤바뀌는 건 찰나의 순간이다. 태강이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한 사이, 문정이 화옥을 돌보다 사고가 발생한 것. 화옥이 허망하게 죽고, 비극의 날들이 이어진다.


화옥의 죽음을 태강에게 설명할 수 없는 문정은 화옥의 자리에 치매에 걸린 자신의 엄마를 앉혀 놓는다. 앞을 보진 못하지만 태강이 이상한 기분을 느낄 때마다 문정은 움찔한다. 아슬아슬한 동거가 이어지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과 달라진다.



기묘한 동거에서 비롯되는 서스펜스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비닐하우스>. 인물들의 예측 불가한 선택과 행동이 충격을 선사하지만, 왠지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한편으론 가슴 아프기도 하다. 죽은 사람을 숨기고, 그를 대신하기 위해 친엄마를 끌어들여 거짓행동과 말을 하는 문정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만약 저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정말 매순간이 지옥이었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순남(안소요)의 등장은 문정의 일상을 더 복잡하고 힘들게 만든다.


어딘가 잘못 흘러가는 듯하지만 아들 때문에 어떻게든 현실을 덮고 한 발씩 나아가야만 하는 문정.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다. 어떻게든 현실을 버텨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하는 인물에게 쏟아지는 비극. 그 모든 짐들을 홀로 감당하기엔 세상은 참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다소 가학적이고 아프디 아픈 현실을 그려 감히 추천한다고 말할 순 없지만 <비닐하우스>는 좋은 작품임은 틀림 없다. 돌봄 노동의 현실, 취약한 환경에 처한 인물들의 선택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 강렬한 독립영화의 탄생을 알렸다.


영화를 보며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2012)>의 몇 씬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는 노인문제와 함께 윤리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김서형의 호연! 김서형은 <비닐하우스>로 제32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제43회 황금촬영상 여우주연상, 제59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연기 잘 하는 배우임은 잘 알고 있지만 특히 문정 역은 김서형에게 단 0.000001%의 오차도 없는, 꼭 맞는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아픈 현실의 민낯을 그린 영화가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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