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추천 영화 <밥정> 리뷰

이 세상에 쓰지 못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설 연휴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맘때쯤 이 영화를 소개하려 하니 따뜻하기도 하고, 조금은 슬퍼지기도 하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는 어머니가 차려준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상이 그리워지는 <밥정>입니다.



'밥정'. 저는 이 단어가 굉장히 묘하게 느껴졌는데요. '밥'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하면서 '정'이라는 단어가 따스한 기운을 줘서 뭔가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밥정>은 방랑 식객으로 유명한 요리연구가 임지호 셰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연출을 맡은 박혜령 감독은 임지호가 출연한 <인간극장>, <방랑식객>, <잘 먹고 잘 사는 법> 등의 연출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고 단순한 연으로만 작품을 만들 순 없잖아요. 임지호의 삶은 조금은 특별했습니다.


친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새어머니를 친어머니로 알고 지냈던 그는 동네 사람들, 친구들로부터 주워 온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가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방황의 걸음을 시작한 임지호는 일식, 중식, 한식점에서 도재식으로 요리를 배우다가 우리나라 전국 곳곳의 식재료를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그의 요리의 차별성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못 먹는다고 버려진 잡초, 이끼, 나뭇가지, 꽃 등을 재료로 삼는다는 것인데요. 한의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일찍이 약초를 배웠던 임지호는 재료를 발견할 때마다 '이 식재료로 뭘 만들 수 있을까?'를 연구하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해왔습니다. 말 그대로 자연친화적인 요리를 창조해낸 인물입니다.



영화를 보면 임지호의 노인들을 향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살아 계실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서 요리를 해준 적이 없었어요. 귀한 재료들을 보면 '아, 이걸 어머니를 위해서 음식을 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하죠." 이 마음을 담아 임지호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부모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정을 담아 음식을 대접합니다. 특히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음식이라는 이 과정을 통해 새롭게 만나는 사람마다 저 사람이 만약 우리 어머니의 친척이었으면 이런 생각도 하거든.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인연이 닿아 내가 만든 이 음식을 어머니의 혈육들이라도 맞이했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감이 있어요"라며 마음을 터놓기도 합니다.


임지호 셰프는 길 위에서 세 번째 어머니 김순규 할머니를 만납니다. 지리산에서 만나 10년 간 연을 이어온 할머니를 향한 진심 어린 마음을 보노라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2009년 처음 만났을 때 셰프에게 냉이를 캐서 된장국을 끓여준 할머니에게 어머니의 정을 느낀 후 연을 잇게 됐는데요.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고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어지는 장면이었달까요?


그렇게 정을 쌓아가던 중 애석하게도 슬픈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김순규 할머니가 유명을 달리하게 되면서 말이죠. 소식을 듣고 지리산으로 향한 셰프는 진짜 어머니를 잃은 것처럼 슬퍼합니다. 그리고는 3일 동안 밤낮을 쉬지 않고 요리를 합니다. 할머니의 대청마루에 고기와 생선, 각종 나물과 과일들로 빼곡히 채운 103개의 요리 접시와 5개의 빈 접시를 올리고 절을 하는 장면을 볼 땐 정말 눈물을 절로 흐르더라고요. 소박하지만 온 마음을 쏟은 요리를 보며 정성과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는 임지호만의 레시피로 만들어진 청각초밥, 솔방울 국수, 돌이끼국 등이 등장하는데요. 요리를 맛보진 못했지만 비주얼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는데요. 자연의 재료들을 써서 그런지 색도 예쁘고 건강한 기운을 내뿜는 메뉴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쓰지 못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라며 자연을 섬기고 건강한 요리들로 정성껏 사람들을 대접하며 평생을 살았던 임지호 셰프. <밥정>은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밥의 힘, 요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영화입니다. 임지호에게 있어 요리는 길 위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였고 어린 시절의 아픔을 치유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어머니의 흔적을 좇기 위해 평생을 방랑했던 임지호. 그의 인생과 요리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영화 감상을 추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누키 우동을 좋아한다면 영화 <우동>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