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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로큰 플라워>

유머와 교훈을 두루 갖춘 작품

짐 자무쉬 감독 특유의 절제된 위트와 냉소적인 풍자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브로큰 플라워>. 일 년에 한 번 꼴은 꺼내어 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이다(빌 머레이의 팬심 때문이기도 하고).


주인공 돈 존스턴은 한때 성공했지만, 지금은 거의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다 할 정도로 무기력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여자친구는 떠나버린다. 재미나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삶은 표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빌 머레이의 연기는 아주 뛰어나다). 그런 그에게 하나의 '활력소'가 될 핑크빛 편지 한 통이 온다. 내용은 20여 년 전 애인이 아들을 가졌었고, 그 아들은 지금 '돈 존스턴'을 찾아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영화는 그 '아들의 엄마를 찾아나서는 돈 존스턴의 역행 여행'을 다룬다.



역행이든 순행이든지간에 여행은 확실히 '삶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행위다. <브로큰 플라워>에서도 이 점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잘나가던 돈 존스턴은 과거의 연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핑크빛 따귀를 맡기도 하고, 옛 감정과 본능에 휩쓸려 하룻밤 잠자리를 갖기도 한다. 어떤 이와는 밥 한 끼 제대로 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온전해보이는 결혼생활을 하는 옛 연인의 집에서 그녀의 남편과 함께 불편한 식사를 하기도 하고, 반응 자체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연인과의 재회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연애여행'을 경험한 돈 존스턴은 '이게 뭐 하는 짓이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은근히 그 여행을 즐긴다. 물론,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도 한번쯤 상상해보지 않는가! '나의 옛 연인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낼까' '과연 결혼을 했을까' '지금은 외모나 성격이 어떻게 바뀌어있을까' 등등 혼자만의 고민에 사로잡혀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아마 돈 존스턴 또한 거기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과거로의 여행을 즐겼을테다. 무려 비행기를 타고 낡아빠진 자동차를 끌면서까지 말이다.



제 아무리 핑크빛 꽃이었다 한들, 현재 돈 존스턴의 모습은 상처 안은 중년일 뿐이다. 그가 역행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현재' 깨달은 바는 이것이다. 바로 누구나가 강조하는 '현재의 중요성'. "All there is, is this the present. That's it." 현재! 그렇다. 현재가 중요한 법. 과거에 아무리 잘 나가면 무엇인가. 그 과거에 휩싸여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또 망가진 꽃들이 될 테고 과거(지금의 현재) 또한 자연스레 망가져버린 과거로 기억될 뿐이다. 


기억이 되었든 추억이 되었든 그것은 똑같은 모습의 현재나 미래가 되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에 충실해야만 한다. 이 영화! 매력있지 않은가. 로맨스와 로드무비 장르를 버무려 인생의 가치를 전해주는 <브로큰 플라워>. 그리고 이 시대 남성들에게 '몸 처신 잘해!' 라고 경고하는 듯도 하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들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깨알같은 '재미' 요소를 지녀서 좋다. 실소를 터트리는 순간 '아?' 하는 깨달음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면 뒷통수를 제대로 한 방 맞은 기분이 들기 일쑤다. 빌 머레이의 허무주의에 빠진 표정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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