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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봉 앞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비극이라는 이름의 사랑


개인적으로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피아니스트(The Piano Teacher), 2001>가 오는 6월 2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필자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여배우와 감독의 조합에 있다. 이자벨 위페르! 나는 그녀의 열혈팬이다. 그녀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접했던 작품들만도 수두룩하다. 그리고 좋아하는 감독, 미카엘 하네케!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르(Amour), 2012>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물론 필자도, 이 작품을 통해 감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아무르>는 제 65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약 20여 건에 달하는 수상기록을 가진 저력의 멜로영화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다.


필자가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 반한 후,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처음 접했던 영화가 처녀작인 <7번째 대륙(The Seventh Continent), 1989>이다. 이 영화를 감상한 후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르>보다 더 좋아하는 영화다. 이유는, 개인과 사회의 폭력성을 날것 그대로 표현해내는 스타일 때문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들에서는 일련의 소재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폭력'이다. 후에 이어지는 <베니의 비디오(Benny's Video), 1992>와 <퍼니 게임(Funny Games), 1997>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폭력'의 코드가 반복된다. 폭력 자체에 초점을 두고 집요하게 인물과 집단을 탐구하는 감독은, 개인과 연인, 심지어 가족 간에서도 폭력을 다뤄낸다. 그래서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같은 문제들은 도처에 널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폭력의 근원인 악(惡)이 존재한다는 것.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자, 과연 몇이나 될까.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도 '폭력'이 존재한다. 주인공 '에리카'는 지적이고 도도한 피아노 교수다. 하지만, 그녀의 직장 밖의 모습은 수동적인 동시에 음탕하기까지 하다. 마흔이 넘은 그녀이지만, 미혼인 그녀는 집에서 여전히 엄마의 간섭 아래에서 속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편, 밤이면 포르노비디오방, 자동차극장 등을 다니며 타인의 섹스를 관음하는가 하면, 자해로써 욕망을 채우기도 한다. 즉 에리카에게는 크게 세 가지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교수로서의, 미성숙한 딸로서의, 판타지성 욕망에 사로잡힌 여인으로서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공대생 '클레메'가 등장한다. 그때부터 에리카의 애정선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원하지만, 남들과는 다른 성적 취향을 지닌 에리카. 그녀는 자신의 신분과 난처해질 수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클레메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려 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그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마음이 뺏긴 에리카는 클레메에게 자신의 성적 취향을 편지를 통해 고백한다. 이후, 상황은 달라진다. 마음이 이끌린 사랑이 아닌, 남다른 취향의 욕망이 사랑의 궤도를 완전히 뒤바꿔버린다. 우아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한 여성이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추락하게 되는 과정. 영화는 이 '비극적인 사랑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뤄낸다. 섬세해서 더욱 잔혹하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다루는 폭력성이란, 이런 멜로물에서 더욱 잔인하게 느껴진다. 사랑과 폭력의 간극이 감상자들로 하여금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수록 주인공에 대한 연민은 가중된다.



결국, <피아니스트>는 잔인한 동시에 슬픈 멜로드라마이다. 이 감정을 심장이 아플 듯이 내리치는 데는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력이 큰 몫을 차지한다. 한 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그녀가 연주해낸 감정은 수십가지다. 앞서 언급한 세 명의 여성상을 포함해, 사랑 앞에서도 수동적인 면과 적극적인 면 모두를 완벽히 구현해낸다. 실제로 이자벨 위페르는 <피아니스트>를 통해 제 54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는 그해 황금종려상을 차지하지는 못했으나,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비극적이며 슬프다. 하지만 그 과정을 그려내는 데 있어서는 감상자를 긴장하게 만드는 묘한 미스터리도 내재돼 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연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특기이다. 공포, 스릴러 영화가 아님에도 감상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카엘 하네케의 멜로영화들은 참으로 현실적이다. 이 감독만의 특별한 멜로를 감상하고 싶다면, 재개봉의 기회를 노려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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