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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의 어머니>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

듣기만 해도 '울컥'하게 만드는 단어, 어머니…. 왜일까? 슬픔이나 감격 등 그녀와 관련된 뚜렷한 상황과 마주하지 않더라도 그 단어만 듣게 되면 괜히 울컥하게 된다. 비단 필자만 그런 것은 아닐테다. 어머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유일한 관념은 아니지만, 개인에겐 유일무이한 존재인 어머니…. 영화<나의 어머니>는 그 위대한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감독 마르게리타는 어머니의 예고된 죽음 앞에서도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한다. 오빠 조반니는 회사에 장기휴가를 신청했지만, 마르게리타는 영화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공사(公私)로 심적 피로를 겪고 있는 그녀…. 그녀의 나날을 지켜보는 과정이 고통스러웠다. 바쁘게,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보인다. 영화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어머니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간다. 일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대비 모두 제대로 못 한채, 무력함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다.


마르게리타의 나날은 결국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그녀를 결코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우리는 살아감과 동시에 죽어가는 중이다. 마르게리타는 그녀의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일을 하지만, 그 시간들을 보낼수록 어머니는 죽음과 가까워진다. 아직 살 날이 많다고 자만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죽음을 염두에 두게 만든다. 나의 죽음이 멀리 있다한들, 죽음은 도처에 널려있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건에 해당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너무도 무감각하고 대비엔 무력하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마르게리타의 상황 속에 들어가보자. 그 상황은 결코 마르게리타만의 것이 아니다. 중년이 되면 부딪히게 되는 삶의 과정이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나의 삶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할 것이고, 그 시간동안 나의 어머니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을 것. 사실, 죽음 앞에선 그 누구도 강해질 수 없다.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이며, 아무리 훈련(대비)을(를) 한다해도 그것과 마주친다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조금이나마 더 잘' 해나갈 수 있을까? 너무나 당연하고도 상투적인 의견이지만, 모두가 건강할 때 잘 행복한 시간들을 많이 쌓아야 할 것이다. 건강하게 잘 살아내는 것. 그것이 죽음을 대비하는 최상의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이 영화는 현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들고, 미래에 대한 대비를 고무시킨다.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비추는 직접적인 연출을 통해서 말이다. 이 영화는 극장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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