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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르>

먹먹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랑이 이토록 가혹할 수 있는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앞서는 것, 죽음. 하지만 떠올리면 가장 설레고 기쁜 것, 사랑. 간단하게 보면 죽음과 사랑이 주는 심상은 거의 양극에 위치해 있다. 영화 <아무르>는, 이 두 양극에 놓인 심상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80대 노부부의 삶을 통해 사랑과 죽음을 관조한다.


80대 음악가 부부인 '안'과 '조르주'의 우아하고도 평온했던 삶은 한순간 뒤바뀐다. 어느날 경동맥이 막혀 쓰러진 안은, 수술 후 오른쪽 반신불수자가 되고 만다. 이제 조르주는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한다. 80대가 되면 자신의 몸도 감당하기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르주는 안을 헌신적으로 간호한다. 하지만, 지쳐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르주는 간병인(도우미)과 간호사를 고용해가며 안의 간호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안에게 치매의 증상이 더해진 것이다. 조르주가 안은 부담은 날로 커져만 간다. 딸 '에바' 내외와 제자 등이 문안을 오지만, 그들은 늙고 병든 이에게 그 어떤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 에바는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는가 하면, 엄마의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만 할 뿐이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조르주는 꿋꿋이 사랑의 몫을 해낸다. 타인들이 감격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커다란 반전'이 등장(물론, 결과를 어느정도는 예상한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첫 신에서 침대 위에서 평온히 잠들어있는 안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한다. 지고지순한 사랑만이 이어질 줄로만 예상했던 관객들이라면 적잖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조르주는 안의 얼굴을 베개로 짓눌러 질식사시킨다. 조르주가 이같은 극단적인 죄를 저지르기 전, 그는 생생한 꿈들을 꾼다. 공포에 가까운 꿈에서 안은 조르주의 삶을 잠식시키는 주체가 된다. 조르주의 내면이 반영된 장면이다. 한편, 아름다운 자태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안의 모습도 비춰진다. 조르주의 상상이다. 또한, 비둘기 신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끝에서, 조르주가 써내려가는 편지에서 그는 고백한다. 두 마리의 비둘기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조르주의 집 안으로 두 번 들어 온 비둘기. 첫 번째 들어왔던 비둘기는 조르주가 창 밖으로 내쫓았지만, 두 번째 들어온 비둘기는 조르주가 그것을 담요로 감싼 채 죽인다. 이 비둘기 신들은 조르주의 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둘기를 날려보냈을 때와 죽였을 때는 안의 죽음 전후를 의미한다. 조르주가 두 번째 비둘기에게 가한 행위는 그가 안에게 가한 행위와 맞닿아있다.





마냥 사랑할 것만 같았던, 주어진 생이 끝날 때까지 사랑만 할 줄 알았던 조르주의 행동에서는 인간 내면 뿌리깊이 존재하는 한계와 그로 인한 폭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은 위대하다. 그리고 그 사랑을 평생 잇고자 노력하는 개체들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상황과 환경에 접하게 되면 도리를 벗어난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사랑과 폭력은 전혀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거다. 감독 미카엘 하네케는 그동안 '치열하고도 집요하게' 인간의 본성, 특히 악(惡)을 다뤄온 감독이다. 사랑과 윤리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할지언정,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은 본능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만다.


<아무르>는 사랑과 폭력, 나아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끝없이 탐구하는 감독의 집요함이 고혹적이면서도 암울하게 그려진 영화가 <아무르>다. 특히 '사운드' 활용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사운드의 가감을 적극 시도한다. 감독의 처녀작인 <7번째 대륙>에서부터 <퍼니 게임>, <피아니스트> 그리고 <아무르>에 이르기까지 현장음과 OST들의 역할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악을 이야기할 때, 소리로 그 악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할 줄 아는 미카엘 하네케의 역량! 나는 그의 천재성에 찬사를 보낸다.


<아무르>는 제64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재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한 수작이다. 그 명성이 내게는 아직도 내게 깊은 여운으로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간결한 제목, 사랑. 하지만 사랑 그 이외의 것들까지 아우르는 이 영화는 관객 스스로를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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