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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영화 <이레셔널 맨>

우리를 '뜨끔'하게 만드는 일침! 역시, 우디 앨런이다!


'칸트는 말했다. 인간 이성은 거부할 수도 답할 수도 없는 문제로 괴로워할 운명이라고' 영화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문구다. '이레셔널 맨'. 비이성적이며 비논리적인, 불합리한 남자. 이 제목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영화 속 주인공, 그러니까 '이레셔널 맨'은 철학 교수 '에이브 루카스'다. 그는 '소문 많은' 교수다. 학생들과 사겼다, 아내가 바람나서 도망간 뒤로 우울증에 걸렸다, 등 그를 둘러싼 소문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 소문들은 그다지 긍정적인 쪽은 아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그는, '이성적'으로는 굉장히 훌륭한 인물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세계'와 '현실'의 괴리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는, 똑똑한 여제자 '질'에 매료된다. 질 역시,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에이브에게 반한다. 그때부터 둘의 관계는 가까워지고, 어느날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한 부도덕한 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에이브는 결심한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해 판사를 없애기로! 질 역시, 그 판사가 심장마비에라도 걸려 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에이브는 실존주의에 경도돼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실천해야 한다'는 사상을 갖고 있던 그는 판사를 없애기 위한 철저한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현실화된다. 결국 판사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보고된다. 원인 모를 판사의 죽음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사건. 에이브의 삶은 순탄히 이어질 수 있을까?


<이레셔널 맨>은, 제목 그대로 이성적으로 보여지는 남자가 사회적으로는 용인될 수 없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가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합리주의자인 칸트의 사상으로부터 시작해, 실존주의의 선구자격인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으로 이어지는 이 영화는, 에이브의 삶을 통해 철학을 풍자한다. 우리가 머리로 생각하고 계산하는 모든 것들이 삶에 그대로 반영될 수 없듯이, 제 아무리 합리적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앞에 서면 누구든 비이성적인 행동을 범할 수 있다는 것. 영화는 이 점을 꼬집는다.


질이 에이브에 대한 생각을 읊은 "그는 처음부터 미쳐있었던 것 같다."는 대사가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의 머릿속을 지배해왔다. 과연 그만이 미친 것일까? 결국, 질 역시 어쩌다 살인에 가담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앉게 됐다.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복수의 마음을 품거나 사회악은 처벌받아야 마땅하다는 에이브의 '생각(이성)'에는 동의할 것이다. 단지 우리는 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란, 아무리 정의에 불타더라도,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부조리한 경우가 있더라도 현실 위에 서기 위해서는 행실을 통제할 줄 알아야만 할 것이다. 한 남자의 아이러니한 이성과 행동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는 늘 강인한 여운을 남긴다.


철학이나 냉철한 이성이 조롱과 풍자를 만나 이같은 재기발랄한 작품이 탄생된 것. 이는, 우디 앨런 감독이 추구하는 일련의 작가정신이다. 늘 그의 영화에 반하고 마는 나는, 과연 합리주의자일까 실존주의자일까? 칸트가 말했듯, 역시나 우리 인간은 '괴로운 존재'임에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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