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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식 멜로영화 <현기증>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들 중 가장 슬픈, 비극적인 멜로드라마 <현기증>. 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맥은 '과거의 인물이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아 죽음으로 이끈다'는 명제다.


현기증 때문에 경찰을 그만 두고 사립탐정으로 활동 중인 주인공 스코티는, 친구의 부탁으로 아내(매들린)를 미행한다. 친구의 아내는, 매일같이 미술관에 들러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앉아 초상화를 응시한다. 초상화 속 인물은 매들린과 아주 많이 닮았다. 이 초상화 속 인물이 기이한 명제의 주체인 것이다. 매들린은 이 초상화 속 인물의 마법에 걸려 있다. 일종의 초자아다. 행의 대상이었던 여자는, 어느 순간 스코티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자신이 동경하는 대상과 닮기 위해 노력한다. 매들린은 초상화 속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과 가까워져야만 한다. 사랑에 빠진 스코티는 그녀를 구해야만 한다. 그때부터 치열하고도 은밀한 로맨스가 시작된다. 사랑의 대상이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소공포증을 무릅쓰고 높은 곳을 달려가지만, 현실은 개인의 의지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자면, 전반부는 스코티가 매들린에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 후반부는 죽은 여자를 살려내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스코티는 죽은 여자를 잊지 못하고 매들린이 자주 갔던 미술관을 혼자 가는 등 그녀의 궤도를 좇는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길에서 젊은 여자를 만난다. 그 모습이 죽은 여자와 너무 닮아있다. 히치콕은, 스코티가 그녀와 곧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명백히 암시한다. 옆모습을 클로즈업하며 스코티와 그녀의 거리를 좁히는 방식을 통해 말이다.


죽은 여자를 살려내 못다한 사랑을 이어가는 스코티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활용한다. 길에서 발견한 여자에게, 매들린이 입던 옷을 사 입히고 동일한 화장법과 헤어스타일을 강요한다. 죽은 여자를 살려내 사랑을 행하는 스코티. 그가 젊은 여자에게 퍼붓는 키스는, 살아있는 것이 아닌 죽음의 키스다. 어찌됐든 스코티의 매들린에 대한 사랑은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죽음 이후에까지 이어진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로맨스다.



스코티에게는 다양한 심리가 발견된다. 고소공포증이 있었으며, 이는 사랑의 힘으로 극복된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과 죽은 자와의 사랑에 대한 모습에서는 네크로필리아적인 성향도 발견된다. 실제로 히치콕은, 죽은 여자를 그대로 살려내는 스코티의 모습에 대해 "주인공 남자는 어느 불가능한 여성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이미 죽은 여성과 잠자리를 하고 싶은 욕구와 비슷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즉 <현기증>은 죽은 자, 즉 시체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영화 <현기증>은, 집요한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반전 있는 음모드라마이기도 하다. 한편, 제목이자 소재인 현기증과 걸맞은 카메라 기법과 상징적인 색채 등 '볼거리'도 갖춘 작품이다. '히치콕식 멜로드라마'를 확인하고 싶다면 <현기증>은 놓쳐서는 안 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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