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로슈푸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애쓴다'라고.
스스로가 진실로 행복하다면, 타인의 눈에도 자연스럽게 그 행복감이 전해질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행복한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한 작위성이 이어진다면,
결국 스스로의 연극에 지치고 말 것이다.
물론, 작위가 단시간에는 타인에게 행복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타인에게 행복한 사람으로 비춰지기 위해 온갖 겉치레와 거짓 언행을 하면서 얻는 것은 무엇이냐는 거다.
타인의 '부러운' 시선을 통해 얻는 '우월감'에 젖는 것.
이것이, 작위적 행복자들이 행복하다 느끼는 부분인 듯 싶다.
그렇다면 그들은, 타인들이 사라졌을 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외롭고, 딱한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자연스러운 모습은 철저히 숨기고 싶어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긍정적인 시선을 통해서만 행복을 느끼는 존재들이니까.
물론, 저마다 행복을 느끼는 원인은 다르다. 여기에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조금(많이) 피곤할 것 같다. 행복함을 연기하며 살아간다는 것 말이다.
언젠가는 스스로가 정한 무대 위에서 지쳐 쓰러져버릴 것 같다.
그래서 결국, 타인들 앞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처음에 세운 '철저한 계획'과는 완전히 다르게 말이다.
- 2016.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