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의 '공동체'를 이루려면 이 모든 장애와 불투명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아를 넘어 타인의 자아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나와 너와 우리를 껴안는 책임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에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인식이지만, 또 인식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신에게 투명하다면 타인의 불투명성은 인간의 가능성 안에서 투명해질 것이다.
- 책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73쪽
(에리히 프롬 지음/나무생각)
자신을 '인식'하고 '사랑'할 것.
그래야 '타인'의 존재 자체를 인식 및 존중하며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에리히 프롬의 확고한 마인드. 좋다.
그가 말하는 자기애와 인식은 이기심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나르시시즘을 싫어한다. 자신만 아는 이는 자신만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타인의 존재 자체도 존경과 사랑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