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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하치의 마지막 연인>

by. 요시모토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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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추천해준 작품 <하치의 마지막 연인>. 내가 좋아하는 영화 <하치 이야기>가 연상되어서 "어? 그거 혹시 영화로 나왔어?"라고 물었고, 친구는 "아니, 안 나온 걸로 아는데? 읽어봐."라고 답했다. 웬걸, 책을 접해보니 나의 질문에 약간의 (귀여운)자괴감이 들었다.


소설은, 마오와 하치의 로맨스를 다룬다. 마오는 영(靈)의 기운이 있는 할머니의 예언대로 하치라는 남자를 만나고, 그와 사랑을 이어나간다. 그야말로 하치는 마오에게 운명의 남자인 셈. 할머니는 마오에게 그림을 그릴 것이며, 하치의 마지막 인연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사실, 마오는 영적인 걸 거부하려 들지만 그녀에게도 그 능력이 있다. 그래서 마냥 부인할 수만은 없는, 특별한 '끌림'을 경험한다. 그 끌림이 현실화면서 마오는, 하치와의 사랑에 점점 빠져든다. 처음부터 확 끌리는 열정적인 사랑은 아니지만, 점점 서로의 관계는 캬라멜이 여름 햇살에 녹아 결국 끈끈하게 붙어버리듯 진행된다.


마오가 하치의 마지막 인연인 이유는, 하치의 굳은 결심 때문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가 있음에도 일본을 뜨려는 결심을 한다. 인도로 떠나 영적 활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 역시 어떠한 '운명적'인 기운을 느꼈던 것.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아니 숙명 때문에 하치는 마오와의 이별을 결심한다. 하치는 사랑의 시한부가 되기를 자처했고, 마오 역시 그랬기 때문에 이 사랑에 대해서는 시한부가 된다. 끝이 명확한 사랑. 슬프지만, 그들은 각자의 인생을 존중해준다. 이 얼마나 올바른 사랑의 태도인가.


'하치의 길과 나의 길이 갈라져 있다는 것, 내가 나의 미래를 그림에 걸고 있는 것처럼, 하치 역시 그곳으로 가는 것에 인생을 걸고 있음을 안다. 한 사람의 인간이 진심으로 결정한 일은 다른 사람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


마오와 하치는, 시한부 사랑 속에서 한층 더 성장해나갔다. 이들 사랑은 성장과 동시에 죽음을 앞둔, 그런 것이었다. '우리는 사이가 좋고, 달빛 아래서 끝없이 끝없이 얘기를 나누었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흥분해서. 어서 동이 트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열중했다. 그러나 끝내는 졸음이 엄습하고, 날이 밝는다.' 뭐든, 결핍이 있어야 갈망이 생기는 법. 둘은 최선을 다해, 남은 시간 동안 사랑에 집중했다. 이별여행도 떠났고, 서로의 삶에 영감이 될 만한 활동들도 나눴다. 요가나 명상과 같은.


우리는 타인의 삶에 결정권이 없고, 따라서 함부로 재단할 수도 없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만 한다. 나의 삶이 중요하듯. 그리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정말 마음에 든 사람끼리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술래잡기를 한다. 타이밍은 영원히 맞지 않는다.'


마오는 살아갈 날이 많고, 사랑할 날 또한 많다. 마오의 마지막 연인은 누가 될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그녀가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라는 점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하치를 사랑했던 것처럼, 언젠가 누군가를 사랑하겠지만, 그저, 그런 일들을 생각하곤 할 뿐이다. 하치의, 마지막 연인의 의무로써.' 옛사랑과 사람에 대한 글. 시간을 흐르고 삶 또한 그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과거는 어떤 기억일 뿐,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강렬했던 추억은 평생 가도 잊지 못할 듯 싶다. 나 역시도, 과거의 뚜렷한 사랑은 잊지 못하고 있다. 재생할 수 없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것.


어린 나이에 고차원적인 사랑을 경험한 마오. 나는 그녀를 통해 많이 배웠다.



[책 속에서]


"싫어하는 살마이 있으면, 좋아질 때까지 떨어져 있으면 돼."

"무슨 소리야?"

하치가 말했다.

"이 세상에는 서로 이햏라 수 없는 사람이 있잖아? 이해하려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안 되는 사람."

"그래서."

"하지만 그 사람도 죽잖아. 똑같이 화도 내고 울기도 하고, 사람도 좋아했다가, 죽잖아? 그런 생각이 들면, 용서해 주자는 생각도 들고, 싫어할 수 없게 되잖아. 그건 멀리서 본다는 거야. 저 파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빛하고 구름이 아름다우면 그 사람도 아름답게 보이고, 바람이 상쾌하면 용서하잖아? 그럭저럭 좋아지잖아?" - 49쪽


그 어떤 예술가도, 점점 변해 가는 이 파란 기운을 종이에 담을 수 없다. 파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나무들을 필름에 담아 봐야, 이 시원한 바람은 찍지 못한다. 그런데도 해 보려고 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성품인가.

- 50,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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