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에세이 <13월에 만나요>

장소 위의 추억


책 <13월에 만나요>는, 작가 윤용선의 장소 속 추억이 서린 에세이다. 다양한 장소에서 있었던 일상들은 훗날 붙잡아두고 싶은 추억이 된다. 대수롭지 않아보였던 하루를 되돌아보고, 곱씹어보면 그보다 뜻깊은 날은 없었던 듯 기억되는 날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이렇다할 특별함이 없어도, 글 쓰는 이의 머리와 가슴이 어떻게 종이 위에 표현되느냐에 따라 특별한 날이 된다. 이 책이, 개인의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특별하게 느껴졌던 건, 저자의 독특한 문체에 있다.


죽 늘어 쓴 일기 같으면서도 시적(詩的)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책에도 묘한 향기가 배어있다. 지금 이맘때. 가을과 어울리는 에세이다.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보이는 저자는, 따라서 말수도 없어보인다. 그래서인지, 풍경들을 관조하는 시선이 날카롭다. 13월은 존재하지 않는 달이다.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월, 혹은 어떤 계절이지만 왠지 모를 '실존적' 기대감을 전하는 제목이다. 희망과 허무과 뒤섞인 13월에 만나자는 다짐은, 보이지도, 이뤄지지도 않을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아니다. 책에 쓰여진 수많은 기록들은 저자의 경험에 의한다.


내 생각엔, 저자가 표현한 13월은 1월부터 12월까지의 1년의 매일을 한데 모은, 가장 뚱뚱한 한 달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가장 건강한 계절이다. 즐거웠던 혹은 쓸쓸했던 날들을 기록하는 때.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때. 그래서 여느 때부터 유연한 때. 이럴 때 글을 쓴다면, 옛 추억들 또한 특별하게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13월에 만나요>도 특별한 책이라는 거다.


사실 나는, 에세이의 경우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관심 있는) 작가들의 것들만 읽는 경향이 있다. 한데, <13월에 만나요>를 읽는 동안엔 많은 부분(저자의 생각)에서 공감했었다. 특히, 서울의 동네들을 훑는 글들을 읽을 땐, '난 저곳에서 어떤 추억이 있었나'하며 회상하기도 했다.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책들은 언제나 좋다. 이 책도 그 범주에 속했다.


산문집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만한 책이다. 13월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을까. 책의 분위기는 묵직하고 다소 시니컬하다. 밝고 몰랑몰랑한 분위기의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은 참조하시길. :D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구들을 옮기며 서평을 마친다. '멈춰 있는 관계는 없다. 관계는 움직이려 하는 것이므로 더 가까워지든지 더 멀어지든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추억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소중하다. 소중해진 것 다음에는 그것이 어떻게 내게서 멀어지는지를 겪는 것이다. 견디어보는 것이다. 견딜 수 있어도 견딜 수 없어도 사랑이다.'





[책 속에서]


연희동

집은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죽고, 그 영혼이 머무는 곳이므로 특별하다. 어떤 집에 들어서면 따뜻한 기운이 어깨를 감싸고, 어떤 집에 들어서면 답답하고 탁하다. 집이 사람을 닮는 것일 수도 있겠고 사람이 집을 닮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집과 사람은 부부 같다. 헤어지기 어려운 암묵적 관계 말이다. 떨어져 있어도 떨어지지 않는 성질의 물체 같은 것 말이다.


마포

"맛있는 커피는 좋아하는 사람과 마시는 커피지……. 세상에 그만큼 맛있는 커피가 어디 있겠어요? 커피 선생이라면서 그런 것도 몰라?"


녹사평

운전하며 바삐 가고 있는 중인데 윤에게 '미안해요'라는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내 잘못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블로노트 Blonote>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