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슬픔이 주는 기쁨
알랭 드 보통의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의 첫 번째 장 '슬픔이 주는 기쁨'은, 고독과 쓸쓸함의 정서를 그려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토대로 '슬픔의 위안'을 이야기한다.
이 장은, 세네카의 글로부터 시작된다.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걸.'
개인적으로 나는 우울과 고독의 정서를 좋아한다. 드 보통의 생각처럼, 우울과 고독이 오히려 나를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줬던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울과 고독의 예술들과 처음 마주쳤을 땐 그것들이 내게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진 않았다. 가령, 애인과의 이별 후 이별에 관한 노래말을 들을 때면 공감에 의해 의해 절절히 이별의 감정에 사무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넘어서면, 이별을 극복한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때로는 힘겹다 여기는 상황을 '극단'으로 이끌어갈 때, 그 상황으로부터 해소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에드워드 호퍼의 화풍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상은 좋다. 그림이지만,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호퍼의 그림들이다. 그의 그림들은 영상의 정지된 화면처럼 보여진다. 롱테이크로 잡힌 풍경들 속에 있는 고독한 사람들은 '툭' 건드리면 천천히 움직일 것만 같다.
드 보통은 말한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슬프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그림 속 사람들은 무표정에 부동의 자세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들은 홀로를 선택했을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홀로 남겨진 것일 수 있다.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모습과 표정들이 왠지 낯설지 않다. 이유는, 그들의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호퍼는, '나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낸다.
"호퍼의 작품은 잠시 지나치는 곳가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자신 내부의 어떤 중요한 곳, 고요하고 슬픈 곳, 진지하고 진정한 곳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다보면, 그들은 결국 내가 된다. 따라서 호퍼의 그림들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호퍼의 그림 속에는 모든 것들이 외로움의 정서를 갖추고 있다. 심지어 사물들도 그러하다.
"휴게소를 보면 늘 호퍼의 <주유소Gas>(1940)가 떠오른다. 이것은 그보다 십삼 년 전에 나온 <자동 판매기 식당>과 마찬가지로 고립을 그린 그림이다. 곧 다가올 어둠을 기다리며 주유소가 홀로 서 있는 광경이 보인다. 호퍼의 손에서 이 고립은 다시 한 번 알싸한 매력을 발산한다."
또한 호퍼는 '여행'하는 자를 자주 그렸다. 그들의 이동수단은 자동차와 기차다.
"호퍼는 또 자동차와 기차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우리가 여행을 할 때 빠져드는 내향적인 분위기에 끌렸다."
"정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생각뿐일 때는 제대로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치 남의 요구에 따라 농담을 하거나 다른 사람 말투를 흉내 내야 할 때처럼 몸이 굳어버린다. 그러나 정신의 일부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외려 생각도 쉬워진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고 있을 때나, 줄지어 늘어선 나무들을 눈으로 좇을 때. 우리 정신에는 신경증적이고, 검열관 같고, 실용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의식에 뭔가 어려운 것이 떠오를 때면 차단해버리곤 한다."
위 글을 읽을 땐 '박수갈채'의 욕망에 사로잡혔다. 나는, '멍'하게 어떠한 풍경을 마주했을 때, 예상하지 못한 생각이 섬광처럼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여행할 때, 드 보통의 생각처럼,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가면서 풍경을 멀리 보낼 때 그런 경험이 많았다. 그 풍경들은 내가 떠올려야 할 생각들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여러 차례 영감을 주곤 했다. 또한 호퍼는 호텔 그림을 무수하게 그려냈었다면서, 낯선 공간으로부터 오는 영감에 대한 생각도 언급돼 있다.
"호텔 역시 정신의 습관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슷한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호퍼가 호텔을 반복해서 그린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호텔 방Hotel Room, 1931> <호텔 로비Hotel Lobby, 1943> <관광객들을 위한 방들Rooms for Tourists, 1945> <철도 옆 호텔Hotel by a Railroad, 1952> <호텔 창문Hotel Window, 1956> <웨스턴 모텔Western Motel, 1957>."
슬픔이 주는 기쁨. 대립되는 관념이 이렇게 조화로울 수 있다는 걸 명백히 보여주는 글이다. 하지만 드 보통의 생각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과 어우러져, 완벽한 공감대를 선사했다. 나는 슬픔이 주는 기쁨을 잘 안다.
"성심성의껏 소외를 시켜놓은 환경에 나 자신의 소외를 풍덩 빠뜨리는 것은 실로 위안이 되었다. 마치 기분이 푹 가라앉았을 때 쇼펜하우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로 저거다!
드 보통이, 슬픔이 주는 기쁨을 말하기 위해 호퍼의 그림들을 활용한 이유는 아래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안개야 많았겠지만, 우리의 시선을 인도해주는 휘슬러의 그림이 없었다면 그 독특한 특질을 보는 것이 약간 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와일드가 휘슬러를 두고 한 이야기는 호퍼에게도 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으로 그리기 전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주유소, 리틀 셰프, 공항, 기차, 모텔, 도로변 식당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우리가 스쳐지나는 모든 것들을 예술가들은 그들이 지닌 '발견의 재능'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인물들이다. 슬픔이 어째서 기쁨을 줄 수 있느냐, 며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용한 환경 속에서 호퍼의 그림들을 찬찬히 살펴보자. 그림 속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의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사랑의 슬픔을 또 다른 사랑으로 극복하듯, 외로움과 슬픔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