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알랭 드 보통 <진정성>

'슬픔이 주는 기쁨' Chapter 2. 진정성

알랭 드 보통의 <슬픔이 주는 기쁨>의 두 번째 장 '진정성'에서는, 그의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일부를 만나볼 수 있다. '클로이'를 사랑하는 '나'의 진정성은, 나를 침묵과 어줍은 사람으로 만드는가하면, 결국 '불구'로까지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사랑의 진정성은 비참함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클로이 때문에 자아와 욕망을 잃는다. 그렇지 않으면 클로이를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신을 잃는 것보다 사랑의 대상을 잃는 게 더 섬뜩한 것. 이것이 '사랑의 진정성'인 동시에 '잔혹성'이다.


5. 진정한 자아는 누구와 같이 있든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클로이의 욕망을 찾아내고 그에 따라 나 자신을 바꾸려는, 진정성이 결여된 시도를 되풀이했다.


7. 어쩌면 침묵과 어줍음은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14.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양복을 입은 뚱뚱한 남자가 어떻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옷이 뜯어질까 두려워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앉아, 무사히 저녁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사랑 때문에 불구가 되었다.


'나'가 자아를 잃어가는 것은 거짓말로 표현된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클로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한다'고 거짓말한다. 상대의 욕망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상대의 선호에 몸을 끼워 맞추는 노력. 사랑받기 위해 거짓말을 감수해야만 한다면, 이 사랑. 과연 괜찮은 거 맞을까?


18. 불가피했던 만큼이나 수치스러웠던 나의 거짓말 때문에 나는 두 가지 종류의 거짓말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 피하기 위한 거짓말과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


개인적으로 앞으로 등장할 글들은, 내가 가장 공감하고, 따라서 인정하는 것들이다.


21. 우리는 계획보다는 우연에 의해 목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세상 모든 일들은 우연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과정에서 계획이 동반된다면 결과의 질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모든 일들이 계획에 의해 시작되거나 계획대로 진행되지만은 않는다. 특히나 이 부분은 사랑에 있어서 두드러진다. '계획된 사랑'의 끝이 반드시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의 계산이 상대의 마음을 녹일 수는 없다. 타인을 유혹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거다.


22. 사랑의 올무는 저마다 특이하기 짝이 없으며, 모든 논리적 인과법칙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가끔 여자들이 나를 유혹하려고 적극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내가 그런 행동에 매력을 느꼈던 적은 거의 없다.


'나'는 클로이를 사랑하지만, 클로이는 나에게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어쩌면 나는 클로이의 그 무심한 듯한 것에 끌렸을지 모른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때, 똑같은 질량대로 그 감정을 품지 않는다. 사랑의 질량을 저울질한다면, 어떠한 경우에서든 수평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울의 기울기 방향은 달라질 수 있으나, 그 어느 때도 수평을 유지하는 때는 거의 드물 것이다. 나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되레 끌리는 경우.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그의 소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아직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못 읽은 독자라면, <슬픔이 주는 기쁨> '진정성'을 통해 '맛보기' 해봐도 좋을 것!

매거진의 이전글 알랭 드 보통 <슬픔이 주는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