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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레볼루셔너리 로드>

결혼의 현실을 해부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결혼을 다룬 영화들을 볼 때면 기분이 이상했다. 이유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그 중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전에 감상했었던 영화를 근래에 다시 접했을 때의 감정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데에 있다. 20대 초반에는, 결혼의 '현실적'인 면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 작품들에 거리감과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은 멀리 했던 것 같다. 그보다는, 결혼 이전의 연애담을 다룬, 소위 말하는 로맨틱한 영화들을 좋아했다. 접근하기도 쉬웠고, 감상의 순간에도, 감상 이후의 느낌도 좋았기 때문이다. 심장이 말랑해지고 콩닥콩닥 뛰는, 감정의 설렘…. 그 맛에 로맨스 영화들을 즐겼다. 결혼 이후의 삶을 다룬 영화들은, 물론 로맨스도 기반돼 있지만, 현실의 삶에 불만족한 이들의 일탈, 그로 인한 불륜, 나아가 파국을 그려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부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다투기 일쑤다. 다툼은 도피의 욕구를 자극하고, 그것이 다양한 '사건'들을 만들어 낸다. 물론, 사건(갈등)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가에 의해 결말은 달라진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한 중산층 가정의 현실을 비관적으로 해부한다. 프랭크와 에이프릴은, 모두의 선망을 받는 꽤 괜찮은 결혼생활을 하는 듯 '보여진'다. 첫눈에 반해 결혼한 부부는 레볼루셔너리 로드 위에 보금자리를 갖고 꿈꾸던 가정생활을 해나가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에이프릴은 아이를 갖게 된 것이 사고였다고 말하는가 하면, 프랭크는 현실적인 가장이 되기 위해 꿈을 포기한 채 공허한 직장생활을 반복한다. 아이들도 어느정도 성장하고 경제력도 갖춰졌을 무렵,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프랑스로의 이민을 제안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또다른 딜레마에 놓이게 만든다. 현재의 삶을 정리하려는 순간, 프랭크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찾아오고 에이프릴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다. 이는 분명 누군가에겐 축복 같은 기회임에 분명한데, 이들 부부에게는 불행이 된다.


이들 부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짚어주는 이는 이웃집 남자, 존이다. 그는 '절망적인 공허감'에 빠진 그들에게 그들 삶을 직시시킨다. 특히, 프랭크에게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선택한 것에 대해 프랭크의 속내를 속시원하게 일러준다. 모두의 선망을 받던 부부는 속내를 들켜버리는 순간,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곪아버린 상처가 터져버리는 순간, 영화는 보다 흥미진진해진다.


영화는 우리를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지향한다. 거기에는 꿈, 일, 화목한 가정생활 등이 포함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현실적인 면들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원치 않는 공허한 삶을 반복한다. 가치관이 다른 상대와는 다툼이 필연적이며, 계획을 실행하려 할 때면 주변상황에 차질이 생긴다. 이러한 고난들이 '현실'이다. 존의 말이 인상적이다. "공허함은 인정하지만, 절망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원치 않는 일상의 반복에 공허함을 느끼며 다른 삶을 지향한다. 하지만, 현재의 삶이 절대 절망적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했을 때, 지금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현실이 절망이라고 인정한다면, 지금 당장 행동을 바꿔야만 할 것이다. 그 타이밍을 놓친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가정생활을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중산층 가정 속으로 들어가 '진짜' 그들의 삶을 해부한다. 배경은 안정적이지만, 인물은 입체감이 다분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오르내리는 감정 연기는 그야말로 명품이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결혼을 소재로 하지만, 미혼자들에게 있어 삶에 대해 성찰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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