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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와 호흐 작품의 공통점

알랭 드 보통의 <슬픔이 주는 기쁨> '따분한 장소의 매력' 중에서

알랭 드 보통은 책 <슬픔이 주는 기쁨>에서 '취리히'와 화가 '페터 드 호흐'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따분함'에 있다면서, 그것이 지닌 매력을 설명한다.


취리히와 호흐의 작품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특별하거나 화려한 멋은 없지만 지극히 일상적인, 그래서 따분하기까지 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점이 우리가 일상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덧붙인다. 사실, 우리의 삶 대부분은 특별함보다는 일상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 좀처럼 고마워할 줄 모른다. 시간들처럼, 수많은 것들을 흘려보낸다. 어쩌면, 수많은 것들을 따분하고 별볼일 없게 만들어버리는 건 우리들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을까?


책에는, 호흐의 그림에 대한 설명들과 함께 취리히에서의 작가 개인의 경험들이 나열된다. 호흐 그림들에 대한 설명들은, '일상성(따분함)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페터 드 호흐를 깊이 사랑하기에는, 너무 깊이 사랑하여 시대를 막론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기에는 뭔가 막연하게 창피한 구석이 있다. (중략)

그는 인간의 일 가운데서도 아주 진부한 것들을 찬양한다. 이를 잡거나, 안뜰 청소하기를 찬양하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사람을 별로 잘 그리지도 못한다. 그가 그린 얼굴들을 자세히 보면 스케치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취리히를 사랑하는 것과 아주 비슷한 이유들 때문에 호흐를 오랫동안 사랑해왔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어린 소년과 함께 있는 여자>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빵에 버터를 바른다. 아이는 의무를 수행하듯 그녀 옆에 서 있다. 모자를 들고, 말쑥한 회색 코트를 입고, 광택이 나는 구두를 신은 그 모습은 영락없는 작은 어른이다. 이 장면이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인 것은 어머니와 아들의 이런 친밀함이 덧없음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흐의 작품들은 소박한 생활, 예컨대 저녁 식사, 집안일, 친구들과 한잔 기울이는 것의 재미와 가치를 일깨워주는 귀중한 임무를 수행하여, 평범한 일상에서 속물적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헛된 야망과 유혹을 진정시켜준다. 호흐는 벽돌로 지은 건물, 윤기 나는 문에서 반사되는 빛, 여자 치마의 주름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흔히 무시해버리는 이런 것들에서 기쁨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일상성을 설명하기 위해, 드 보통은 몽테뉴의 글도 인용한다.


'페터 드 호흐가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그리기 칠십여년 전, 미셸 드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호흐의 예술의 분위기 가운데 일부를 언어로 포착해냈다.'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외교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화려한 행위들이다. 그러나 꾸짖고, 웃고, 사고, 팔소, 사랑하고, 미워하고, 가족과 함께ㅡ또 너 자신과 함께ㅡ상냥하고 정의롭게 함께 사는 것, 늘어지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더 주목할 만한 일이고, 더 드물고, 더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건 그런 한적한 삶에서 이행해 나가는 의무들은 다른 화려한 삶의 의무들만큼이나 어렵고 또 긴박한 것들이다. _몽테뉴의 <수상록> 중에서


드 보통이 정리하는 취리히와 호흐의 그림들이 지닌 매력이자 교훈은, 따분하고 부르주아적이기만 해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인간미 넘치는 곳을 일러준다는 것이다. 더하여, 일상성을 '포착'해낸 호흐의 그림들은, 우리가 간과해버렸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함으로써 잃거나 줄었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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