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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영화 <해변의 여인>


영화 <해변의 여인>은, 홍상수 감독의 작가성이 '두드러지게' 반영된 작품이다. 그의 작가성은 지금에야 뚜렷해졌지만, 초기작들에서는 명확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 영화의 특징, 그러니까 홍상수 감독의 작가성은 우연과 반복이다. 우연히 마주친 상황이지만 그 상황은 재미있게도 반복된다. 약간의 다름(변주)만이 있을 뿐, 멀리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마치 데칼코마니를 보는 듯하다. 홍 감독은, 우연과 반복을 우리 삶의 단면이라고 재차 강조해왔다.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감독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소재는 '사랑'이다. 사랑 역시 우리 삶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남녀의 만남은 우연에 의한 경우가 많다. 물론, 계획적으로 시작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역시 '타이밍'이나 서로의 '느낌(feel)'이 맞지 않다면 어긋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랑은 명확한 계획이나 의도 등의 이성적인 것보다는 우연과 감성, 즉 비이성적인 것들에 의해 시작(그리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는 언제나 성(性)에 대해 진실하다. <해변의 여인>에서도 역시, 남녀의 의식 깊은 곳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성적 본능을 직설적으로 다룬다.


중래와 문숙, 그리고 선희는 자신의 의식을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쏟아낸다. 마치 그들의 연애담을 어설픈 카메라맨이 쫓아다니는 것처럼, 영화는 사실적이다. 정제되지 않은 주인공들의 대사는 이들이 찾은 서해 해변 위 자갈들처럼 거칠다. 하지만 이 거친 묘사는 흔들리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고스란히 전달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기법인 것이다.


영화는 크게 세 부분(중래와 문숙의 만남, 중래와 선희의 만남, 문숙과 선희의 만남)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다뤄지는 사랑 또한 '삼각'을 이룬다. 흔히들 말하는 삼각관계가 <해변의 여인> 속 사랑 형태다. 후배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 중래. 문숙을 마음에 두고 있지만, 그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욕망에 휩싸여 하룻밤 관계를 맺는 것 역시 삼각관계다. 결국, 이들은 마지막 장에서 삼자대면(비슷한 것)을 한다. 우연히 만난 세 명의 모습은 경계와 어색함이 어우러져 낯설기 짝이 없다. 이같이 뾰족하고도 예미한 관계 위에 놓인 중래는 결국 찌질한 모습으로 서해바다를 떠나고 만다. 한 곳에서 일어난 비슷한 두 가지 연애담은, 한 사람에게서 만나볼 수 있는 이중(혹은 다중)성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홍상수 감독 영화들의 또다른 특징을 만나볼 수 있다. 바로 '이미지(환상)를 위한 이중성(실재)'이다. 중래가 문숙에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한 환상과 실재의 차이. 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는 소재다. 사람들이 타인에게 기대한 이미지(환상)는, 타인에게 해가 될 수 있다. 타인은 자신의 이미지 때문에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닌 (긍정적)이미지를 위한 거짓 행동을 하고 만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거짓이다. 이미지를 위해 거짓된 언행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중래의 마지막처럼 어딘가를 다칠 수밖에 없다. 문숙과 선희는 '감독으로서의 중래'를 사랑했다. 그녀들이 '환상' 속에 있는 '감독'이 본능에 휩싸인 '남자'로 '실재'할 때, 그녀들은 실망하고 만다. 이들의 사랑은 결국 진지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부서진 한낱 꿈에 머무르고 만 셈이다. 자신이 꿈꿨던 이미지에 배신당한 문숙 역시, 환상의 공간(바다)에서 벗어나려 할 때 자동차 바퀴가 갯벌에 빠지고 만다. 재미있는 상징들이다.


이렇듯 <해변의 여인>은 우연과 반복, 환상과 실재의 차이 등 홍상수 감독의 작가성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직설적인 대사들과 상징적인 이미지(영상)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감독이 구성한 캐릭터들은 관객들에게 손가락질 받을만하지만, 막상 그들의 언행을 두고 100% 지적질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들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활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의 역할이 필수적인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 이 영화에서는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펼쳐낸 고현정의 활약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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