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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램스>

체온, 인간을 살릴 수 있는 힘


보고싶었던 영화 <램스>. 포스터로부터 예상했던 이 영화에 대한 필자의 느낌은 '따스함'이었다. 양과 풍성한 수염이 난 할아머지. 그리고 밝은 느낌의 배경색. 이 구성들 때문에, 필자는 이 영화가 따스하고 유머러스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가 품고있는 온도는 영하의 차디참이었다.


<램스>의 배경은 설원이 펼쳐진 아이슬란드의 한 시골 마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양을 키우는 것이다. 물과 불 밖에 없는 이곳에서, 양은 거의 숭배의 대상 수준이다. 양을 잘 키운 사람에게는 상까지 준다. 그만큼 이곳에서의 양의 입지는 대단하다. 하지만, 이 양의 마을에서는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양 전염병 스크래피에 걸린 양이 발견된 것이다. 졸지에 이 마을에 있는 양들 모두가 도살되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스크래피에 걸린 양은, '키디'의 소유다. 키디는 우수 양 선발대회에서 1위를 거머쥔 인물이다. 키디의 양이 스크래피에 걸렸다고 폭로한 인물은 그의 동생 '굼미'다. 굼미는 우수 양 선발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인물이다. 키디는 굼미가 질투심 때문에 '스크래피 사건'을 폭로했다고 생각하고 그의 집에 찾아가 총을 겨눈다. 이렇게 '살벌'한 사건이 벌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친형제 사이다. 하지만 둘은 40년 간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어떤 이유 때문에 굼미가 스크래피 사건을 폭로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지만, 결국 그 사건으로 하여금 굼미 역시 애지중지 키워왔던 양들을 도살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 사건 때문에, 키디와 굼미는 또다른 상황에 마주한다. 키디는 도살하지 않겠다고 버티기 일쑤고, 굼미는 양들 몇 마리를 지하실에 몰래 숨긴다. 그 시점부터 영화는 서스펜스의 기운을 내뿜는다. 굼미가 겪는 위기의 순간들 때문에 웃지 못할 상황들이 이어진다. 폭소할 만한 사건이 전혀 없는데, 오히려 안타까운 상황들로만 이어진 영화임에도, <램스>는 웃지 못할 상황들로 관객들의 웃음을 전달한다. 한마디로 '블랙코미디'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스토리와 전개 속도는 느리지만, 벌어질 사건들에 대해서는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 이것이 <램스>의 매력이다.


결국, 영화는 휴머니즘으로 종결된다. 그렇다고 억지스러운 감동 유발 코드를 심었다는 뜻이 아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맹렬하게 추운 날, 키디와 굼미는 각자의 체온과 호흡으로 서로를 보듬는다. 얼어붙은 심신을 녹여주고 달래주는 건, 인간의 따듯한 내면과 그것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체온이다. 온갖 차가움으로 도배됐던 영화는, 결정적인 한 방으로 따스하고 고요해진다. '인간미'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 <램스>. 서스펜스가 감동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영화로 기억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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