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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라면 통감할 영화
<줄리에타>



오랜만에 만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신작 <줄리에타>는 제69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 개봉일정을 기다려왔던 작품이다. 필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팬이다. 동성애자인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 즉 퀴어영화들과 함께 사회적 성 약자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해왔다. 이는, 감독이 '자신만을 위한' 작품 활동만을 해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성인 필자 역시,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다루는 작품 속 캐릭터의 일부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을 사랑한다. 마치 나를,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나아가 여성 전체를 충분히 이해해주는 남자가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감독에게 빠지게 만든 영화는 <그녀에게(Talk To Her, 2002)>이다. 존경하는 대학 강사의 소개로 감상하게 된 작품인데,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크게 감동받았었다. 당시에는 낯설었던 스페인 영화에 대해 대학생이었던 필자는 단순히 '강렬한 멜로영화'로 그 작품을 인식했었다. 지금보다 이해력이 부족했던 당시에도 <그녀에게>가 선사했던 인상은 강렬했다. 특히,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정작, '베니뇨'가 사랑했던 어여쁜 '알리샤'보다, 상대적으로 강인한 느낌의 투우사 '리디아'라는 캐릭터에 매료됐었다. 리디아를 둘러싼 붉은 기운들에 꽂혔던 것이다. <그녀에게>가 한때 '인생영화'가 되면서(물론, 지금도 탑 5에 속한다), 필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들을 모조리 찾아봤다. 첫 문단에서도 언급했듯, (남성)동성애 코드는 작품들 속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동성애자가 아닌 남성들은 의상도착증 등에 시달렸다. 모성애가 주 소재로 다뤄진,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내세워진 작품들 속에도 남성의 여성성 코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성을 다룬 작품들에 보다 관대해질 수 있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들은, 필자를 퀴어영화 세계로 입문시킨 동기였다.


이제 <줄리에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이 영화는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떠남』에 수록된 '우연', '머지않아', '침묵' 세 편의 단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고 한다. 이 사실은, 큐레이터를 통해 알게 됐는데, 필자는 영화 감상 내내 원작 기반의 작품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페드로 알모도바르화'된 작품이었다. 물론, 원작 역시 감독의 가치관에 걸맞은 내용들이었기에 감독에게 영감을 주었겠지만, 마치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창작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줄리에타>는 알모도바르식이었다.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에서는 다른 작품들, 그러니까 다른 영화나 책, 미술작품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떠남』은 그의 이전 영화 <내가 사는 피부>에서도 소품으로 활용된 작품이다.


<줄리에타>에서 전면에 드러난 코드는 '모성애'다. 영화는, 주인공 '줄리에타'가 12년 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딸 '안티아'의 소식을 우연히 접함으로써 그녀의 과거사를 풀어내는 플래시백 형식으로 진행된다. 안티아의 소식을 우연히 접한 줄리에타는 새 남편과 함께 포르투갈로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안티아가 돌아올거라는 믿음을 안고 안티아가 유일하게 아는 집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안티아의 탄생배경과 자란 환경을 풀어내는 과정에는 줄리에타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내용도 자연스레 언급된다. 우리네 인생에는, 돌고 도는 원형성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에서도 보여지듯, 줄리에타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딸 안티아는 비슷한 운명의 궤도를 걷는다. 궤도 안의 가장 강력한 요소는 '사랑'이다.


출처: 영화 '줄리에타'


혈연에 의한 사랑은 좀처럼 끊을 수 없다. 끊으려고 노력해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줄리에타는 '중독'이라는 단어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사랑의 본질은 그 이상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내러티브의 형식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비주얼성은 확실히 알모도바르식이다. 온갖 사랑의 욕망을 안은 줄리에타를 둘러싼 붉은 기운들은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오는 것들로, <줄리에타>에서도 '확연히'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알모도바르의 여자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들도 멋있다. 그의 영화들에서 특히 멋있는 부분은 상징성 가득한 '화편화'에 있다. 장면들은 마치 회화 작품처럼 미학적이다.


출처: 영화 '줄리에타'


모성애가 두드러지는 영화 <줄리에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전작 <귀향>,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하이힐> 등과 닮아있다. 줄리에타라는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인생의 궤도'를 성찰하고 '사회적 시선'을 재인식하게 만드는 영화 <줄리에타>. 기대했음에도 좋았던 작품이다. 엄마와 함께한다면, 더 의미있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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