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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르>, 상처의 순환



영화 <엘르, 2016>는 한 여성의 상처로 뒤덮인 삶을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이다. '엘르'의 아버지는 그녀가 열 살 때, 동네 주민 스물 일곱 명과 동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집 안의 모든 물건을 태우기로 했고, 엘르는 그런 아버지를 돕는다. 그렇게 엘르는, 살인에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행위에 공범이 된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엘르는, 그렇게 성인이 된다.



영화는, 엘르가 강간당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강간을 당하고도 엘르는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이미 더럽혀진,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그녀는 스스로 아픔을 삭인다. 모든 물건과 흔적들은 태워 없앨 수 있지만, 머리와 마음에 새긴 기억과, 무엇보다 타고난 본능은 잠재울 수 없는 법이다. 어찌됐든, 악의 본능과 환경에서 자라난 엘르는, 성공한 CEO가 되지만 불운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 마디로 '꼬여버린 인생'이다. 남편과는 이혼하고, 아들은 말썽만 피운다. 한편, 그녀 역시 폭력과 섹스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엘르. 그녀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당찬 여성이지만, 깊은 곳에서 숨쉬는 아픔은 억누를 수 없는 법이다.


엘르는 자신을 둘러싼 상처와 악의 원인으로 아버지를 원망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강요하지만, 그럴수록 엘르의 분노와 혐오는 커져만 간다. 이 영화에서 남성들은 폭력과 무능의 옷을 입는다. 엘르에게는 한심하고 나쁜 상대들이다. 이렇듯 영화는, 시종일관 엘르의 불편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끝내, 영화의 마지막에서 엘르는 폭력을 선사한 인물들을 정리한다. 하지만 그 결말은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다. 가슴 아픈 면도 있다. 그녀는 관계를 끊어야만 행복할 수 있었을까? 아프고 씁쓸한 영화 <엘르>. 하지만 엘르처럼, 실제로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한 인물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그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엘르는 자신을 둘러싼 상처의 굴레에서 벗어나 조금은 나은 미래로 향할 수 있을 듯 보여진다.


사실, <엘르>는 다소 거친 영화들도 잘 감상하는 필자도 보기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의미 있는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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