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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의 용기,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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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의 용기가 배어있는 에세이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는, 제목처럼 편견 없는 사회를 향한 두려움 없는 외침으로 가득차 있다. 책 표지에는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소재에 대한 카피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곽정은이라는 한 여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의 잘못된 사회적 통념들이 다양하게 기록돼 있다.


편견은, 타인의 삶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삶도 위축시킨다. -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가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듯, 편견은 자타 모두에게 해로울 수 있다. 편견 어린 시선을 받는 대상 뿐만 아니라, 편견에 휩싸여 타인을 평가하는 자신 또한 괴로울 수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의 여성은, 남성성에 비해 열위에 있다. 사회적 문제들에 있어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100%는 아니지만, 아직도 성폭력의 피해자는 여성인 경우가 많고, 심지어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도 여성은 수동자인 경우가 많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많이 바뀌어왔고 바뀌어갈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 바뀌어갈 사회를 위해 용기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저자는 양성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자인 필자가 봐도 책의 무게가 여성 중심에 실려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이 이 책을 접한다면 다소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다소 연민이 느껴졌던 것은,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보다 강하게 표현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전제 하에 전개되어야 할 이 책에서는 피해자이자 수동성을 띤 여성의 모습들이 보여진다. 물론, 그 목소리를 읽기 위해 이 책을 편 건 사실이지만,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피해와 열등의식들로 점철된 책인 듯 하여 솔직히 웬만한 강인함을 지닌 독자가 아니라면 다소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됐든 저자는 '용기'를 냈다. 자신의 실질적 경험들을 과감히 드러냈고, 그 상황에서 느꼈던 모멸감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더불어, 부당함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 구조와 편견들에 대해 꼬집어냈다. 끝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향성에 대해서도 써냈다.


소싯적 겪은 성추행에서부터 '이혼한 주제에 연애와 섹스 칼럼을 쓰냐'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를 들은 것, '메갈리안'이라는 꼬리표와 외모 비하 발언을 포함한 각종 인터넷 언어 폭력에 시달려 왔다는 그녀. 당찬 모습 뒤에 겪어야했던 온갖 수모와 고충들은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를 완성한 아픔들이다.


물론, 이 책의 소재는 저자 개인의 경험들로만 구성되진 않는다. 연예, 정치계 이슈들과 각종 사건사고들, 저자가 인터뷰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도 반영돼 있다. '묻지마 살인사건'과 '홍상수 김민희 불륜설' 등은 흥미로운 동시에 애달픈 소재로써 저자의 목소리에 무게감을 실어준다.


앞선 평들만 보면, 이 책은 한 여성의 쓴 경험과 목소리로만 구성돼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은, 여성이기에 공감할 만한 따듯한 위로와 강인한 에너지도 포함하고 있다. 연애와 섹스, 여행, 식욕과 외로움의 관계 등을 다룬 부분들이 그것이다.


필자가 권하는 이 책의 주 타깃은 '연약한' 여성이다. 물론, 책의 내용에 십분 공감할 만한 독자층은 페미니스트들이다. 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듯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느끼고 경험한 여성의 힘있는 목소리다. 연약하여,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자들이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바뀔 수 있다. 물론, 남성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여성을 이해할 줄 아는 남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편견과 가부장제에 익숙한 남자들이라면, 이 책에 분노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편견도 두려움도 없이>는, 곽정은의 용기와 사회를 향한 비판적인 시선이 어우러진 '에너지 가득한' 에세이다. 사회와 시선의 변화는,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연거푸 일깨워주는 이 책. 매력적인 한 여자를 만날 수 있어서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책 속에서]


이쯤 되면 산부인과는, 여성의 다른 여성을 향한 편견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장소가 되어버린다. 건강을 위해 찾았지만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기묘한 곳. - 19쪽


열렬한 사랑을 했으나 그곳에서 빠져나온 누군가에게 물어보라. 어떤 방식으로든 가장 뜨거운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사람과 멀어지는 바로 그때 가장 큰 외로움을 맞닥뜨리게 되는 연애의 역설은, 연애하는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기본이다.

오히려 고독이라는 감정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야말로 연애를 하기에 적합한 때일 것이다. 대단한 삶을 욕망하기보다 묵묵히 자신의 의지를 따르기로 결심했을 때 담담히 자기 삶을 살 수 있듯이, 대단한 연애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야 오히려 담담하게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 - 28쪽


이런 가치관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누가 뭐라든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가짐이다. 여자를 나이로 규정짓고 싶어하는 사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고, 지금까지 내가 겪은 경험과 내면의 변화들이 가능했던 힘은 바로 자신이 관통한 시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39쪽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의 문제는 단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문제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사실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사람들만이 시대착오적인 콘텐츠를 답습하고 있을 뿐, 젠더 의식의 유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과제와 직결된다. - 160쪽


내가 좋을 것, 그리고 동시에 상대방도 좋을 것. 그렇게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할 것. 이것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섹스는 수십 수백 번을 해도 의미가 없는 일이니까. 너의 사정만큼 나의 오르가슴도 소중하니까. -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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