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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흔들리는 물결>

파도마저 잠재우는 잔잔한 위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때가 있다. 거센 풍파가 몰아칠 때, 강한 나뭇가지는 부러지지만 부드러운 나뭇가지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진 않는다.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것이 잔잔한 물결일 수 있다. 영화 <흔들리는 물결>의 분위기가 그랬다.


남자 '연우'는 말이 없다. 사람들과의 관계성도 부족하고, 가족들과도 유대성이 약해보인다. 정신과를 찾는 그에겐 무언가 문제가 있어보인다. 연우가 근무하는 병원에, 어느날 여간호사 '원희'가 들어온다. 원희는 연우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연우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조금씩, 천천히, 마음의 문을 열어간다. 그러면서 연우와 원희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영화의 시작에서 연우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떤 사건에 휘말린 듯한 그였다. 그리곤 화면이 바뀌었다. 내용이 전개되면서, 연우의 '사연'이 드러난다. 연우는 원희에게 고백한다. 여동생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그 트라우마 때문에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그리고 원희의 사정도 드러난다. 췌장암 말기의 그녀는, 부모 없이 오랜 시간 동안 혼자였다고….


이렇듯, 연우와 원희는 심신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흔들리는 물결>은, 이 둘이 만나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극복해나가려는 모습을 비추는 영화다. 연우는 동생의 죽음 이후,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주변에는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병원 앞에서 실랑이를 벌였던 남자는 자살했고, 원희도 죽음을 앞두고 있다. 왜 자신에게 죽음이 이토록 가깝냐며 하소연하는 원우의 대사가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연우의 삶에 원희는 한 줄기 강렬한 빛이었다. 연우의 아버지가 말했듯, 빛이 있으면 식물을 자라는 법이다. 우리에게 태양이 존재하는 한, 희망 역시 뒤따르게 마련이다. 연우와 원희에게는 서로가 그런 존재였다.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자, 차가움을 녹여주는 볕이었다. 둘은, 원희의 죽음으로 이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시간들'을 경험한 것이다. 매일, 태양은 뜨기에 연우에게도 또다른 희망이 다가올 것이다. 태양이 내리쬐는 잔잔한 물결 속으로 들어가는 엔딩신이 인상적이다.


가슴 아프고, 먹먹한 영화 <흔들리는 물결>. 상처를 치유해주는 힘은 '사람'에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만들어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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