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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有'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사회의 폭력에 맞서는 모성의 힘



이혼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지선'은 보모를 고용한다. 중국 출신의 보모 '한매'는 착실한데다, 착하다. 무엇보다 지선의 딸 '다은'을 엄마처럼 아껴준다. 지선은 한매에게 다은을 거의 전적으로 맡기다시피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믿었던 한매는 다은과 함께 불현듯 사라진다. 제목 속 '사라진 여자'는, 바로 한매다.


지선은 한매와 다은이 사라진 걸,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된다. 하지만 섣불리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현재 지선은, 전 남편과 다은의 양육권에 대해 소송 중이기 때문이다. 한매와 다은이 사라진지 사흘쯤 됐을 때 지선은 경찰을 찾는다. 하지만 경찰들은, 역시나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느리다. 지선은 자신이 직접 다은을 찾겠다고 나선다. 그 과정에서 지선은 한매의 과거와 거짓을 하나둘씩 알게 된다. 지선이 알았던 한매의 신분은 모두 거짓이었던 거다. 거짓들과 마주하면서 지선의 심경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녀의 흔들리는 심경처럼 벨소리도 시끄럽게 울려댄다. 한마디로, 지선이 딸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지럽고 복잡하다. 구역질 나는 상황들과 마주하면서 지선은 급격하게 무너진다.



<미씽: 사라진 여자>의 주 소재는 모성애다. 지선의 모성애로부터 시작해, 한매의 모성애까지 보여준다. 모성의 다른 이름은 희생이다. 모성애는, 그 어떤 범죄를 감행할 만큼 극도로 강인하다. 이 영화에서처럼, 내 아이를 위해 다른 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도 문제 없다고 여기는 모성애도 있다. 모성애를 다루는 대개의 영화들에서 대표적으로 다루는 소재는 '범죄'다. 내 아이에게 해를 가한 타인에게는 자식이 당한 아픔 이상의 복수를 감행하는 것이 범죄영화 속 어머니상이다. 더욱 심한 모성의 경우, 자식의 잘못이 분명하고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싸안아주려 한다. '내 아이는 절대 그럴 리 없어. 만약 죄가 있다면, 내가 대신 받겠어'라는 식이다.


특히, 우리나라 모성애 영화들에서 이 점이 두드러진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모성에 책임과 희생의 힘이 더한 우리나라에서는 모성이 범죄의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우리를 위해 타인에 해를 끼치는 이기적인 면들. 물론, 모성의 측면에서 이 점은 대단하게 보여질 수 있지만, 과연 옳은 것일까? 의문의 여지가 있다.


<미씽: 사라진 여자>가 모성 외에 다루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차별'이다. 한매는 엄청난 차별과 그로 인한 폭력에 시달린다. 언어, 신체적 폭력은 물론이거니와, 사회·경제적 차별로 인한 심적 폭력에도 시달린다. 이 과정에서 한매의 모성애가 본격적으로 밝혀진다. 중국에서 건너온 한매는 시골에서 결혼하여 딸아이를 낳지만,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냉대받는다. 남편 역시 망나니 격이다. 결국, 그녀의 딸 '재인'은 병에 걸리지만, 입원비가 없어 결국 퇴원당한다. 그 퇴원의 원인에 지선 부부가 있었던 거다. 결국 재인은 죽게 되고, 그때부터 한매는 '다은 납치사건'을 계획해왔던 것이다.



폭력으로 인한 폭력이, 또다른 폭력을 낳은 셈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한매는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온갖 차별에도 맞서 싸웠고, 심지어 자신의 신체도 팔았다. 이어, 자신의 딸을 위해 범죄자가 된다. 온갖 생채기를 경험한 그녀는 결국,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딸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 물 속으로 몸을 던진다. 왜 이렇게 아파야만 할까? 물론, 한매를 구하기 위해 지선 역시 물 속으로 자신을 던진다. 이들 두 여자는, 용서와 구원을 위해 모체의 상징인 바다로 향한 것이다.


안타까운 건, 이 영화 자체가 '차별'로 점철돼 있다는 점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온갖 고초들이 어우러져 있다. 앞서 언급했던 한매의 수난 뿐만 아니라, 지선이 겪은 온갖 사회적 차별도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코드들로 작용한다. 편견과 아픔, 슬픔이 어우러진 <미씽: 사라진 여자>. 하지만, 그 뒤에는 무엇보다 강인한 여성의 본성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 감독이 그린 여성의 이야기는, 여 관객인 필자가 공감하며 감상하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모성애 영화들의 결말은 착잡한 경우가 많다. 좀 더 밝은 결말을 그려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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