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내가 고백을 하면>
서울 남자와 강릉 여자의 러브스토리
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을 움켜쥐었던 영화다. 펼쳐질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배가시키는 제목처럼, 영화 또한 '명백한 결말'로 끝내지 않는다. 이런 '호기심의 매력'을 지닌 이 영화. 캐릭터들에 대한 호기심이 연이어지게 만드는 것 또한 이 작품만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나긴 하지만, 영화에서 비쳐지는 두 남녀의 일상은 지루하고도 단출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계획적'이다.
영화사 대표이자 감독인 서울남자 인성은 주말마다 강릉의 풍광과 맛을 좇아 그곳으로 향하고, 간호사인 강릉여자 유정은 문화생활을 줄기기 위해 주말마다 서울로 향한다. 그런 그들은 평일에 몸담고 있는 자신들의 공간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그렇게 계획적으로 달래며 살아가고 있다. 현실의 결핍을 채워나가는 그들이지만, 막상 그 공간에서 그들은 마음 편히 '쉴 공간'이 없어 고민에 빠져있다.
그들은 각자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주말마다 집 교환하기'를 실행한다. 그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집을 가보라는 말이 있듯, 그들은 서로의 집에 사는 동안 서로의 취향과 생활태도를 짐작해나간다. 이성을 만날 때도 '취향의 일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은 취향에서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문화생활과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 영화를 제작하는 남자, 문화생활을 위해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떠나는 여자. 지치고 피로할 때마다 커피를 찾는 그들. 그들의 방향이 일치하는 만큼 제 3자가 봤을 땐 '환상의 커플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을 것.
이 영화의 호흡은 느리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생활이 계획적인 캐릭터들의 일상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느낀 이 영화의 매력은 유정에게 흠뻑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강릉과 비교했을 땐 보다 나은 공간일 수 있겠지만 문화생활에 대한 결핍 때문에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고픈 본능을 억누르고 있는 나의 현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캐릭터가 유정이다. 그의 문화생활에 대한 열정, 특히나 그녀의 거실에 비치된 영화<카모메 식당>의 포스터액자 또한 나와 그녀를 동일시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소품이었다.
확실히 '애간장 태우는 로맨스'였다. 분명, 취향이 맞고 접촉할 수 있었던 기회가 많았음에도 끓어오름이 없었기 때문일까? 여느 로맨스와는 다르게 '느리고 느린 호흡'이 다소 생경하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내겐 더욱 특별하게 기억됐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영화라, 세 번을 감상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볼 때마다 좋다. 저러한 로맨스가 현실에서 가능할까, 라는 의문과 동시에 충분히 있을 법한데 내가 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이라는 상상을 가능케 만들어줬던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을 감상할 때마다 연상되는 작품은 <미술관 옆 동물원>. 같은 취향을 지닌 두 남녀의 은근한 로맨스를 다룬 영화가 <내가 고백을 하면>이라면, <미술관 옆 동물원>은 전혀 다른 취향을 가진 두 남녀의 은근한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다. 캐릭터의 관계는 대조적이나, 결국엔 로맨틱하게 마무리된다는 점(그래서 사랑엔 정답이 없다는 게 맞는 듯)에서는 일치하는 두 작품. 비교하면서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고백을 하면>의 엔딩에 등장하는 내가 참 좋아하는 대사를 옮기며 리뷰를 마무리하려 한다. 서로 부등켜안고 키스를 퍼붓는 식의 엔딩은 아니지만, 그들의 밝은 미래를 짐작케 하는 엔딩 대사….
인성: 뭐 드실래요?
유정: 아무거나요.
인성: 그래도 뭐.. 좋아하시는 거 있을거 아녜요?
유정: 뭐 드실건데요?
인성: 전, 아메리카노요.
유정: 전, 카푸치노요.
인성: 저도 카푸치노 마실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