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걷기의 진수는 어떤 목적이나 목표물이 없다는 것이다.
시골로 여행을 떠나기 전 갖춰야 하는 마음가짐은 완전한 정신적 진공상태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중략)
산책자가 갖춰야 하는 적절한 마음가짐은 흔들림 없이 완벽한 수동적 자세이다.
이는 곧 어떤 느낌도 받아들이겠다는 개방적 태도이다.
자비로운 자연의 위대한 힘이 이끄는 대로 나 자신을 그냥 내맡기겠다는 태도이다.
또한 수동적 자세는 영혼의 겸손한 감수성이자,
위대한 자연이 가르쳐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배우려는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열망과 다르지 않다.
- 책 <어느 인문학자의 걷기예찬> 13쪽
지난 여름, 약 한 달 가량 매일 8km 가량 시골길을 걸었다.
시간대는 오후께에서 해질녘, 그리고 어둠이 짙게 깔린 밤까지였다.
하루 중 색의 변화가 가장 강한 때였다.
같은 길을 매일 걸었음에도 매일 다른 곳을 찾은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자연은 그런 것이다. 변화무쌍한 것. 좀처럼 멈출 생각을 않는 것.
무덥다 못해 숨이 탁 막힐 듯한 올해 여름날은,
짜증과 답답한 공기를 선보인 대신 황홀한 하늘 풍경을 선물했다.
'가슴이 답답할 땐 하늘을 올려다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시골길을 매일 걷기 전까지, 나는 여름 하늘 묘미를 미처 알지 못했다.
피부를 덮은 무더위를 이겨내느라, 무더위의 원인인 태양을 의식적으로 기피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걷기를 통해 하늘을 보는 법을 배웠다.
더위를 즐겼고, 하늘 감상이라는 또 다른 즐길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녹푸른 들판과 강렬한 빛과 뜨거움 사이를 걷는다는 것은 즐거움으로 가득한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매일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풍경을 찍어 기록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아주 미묘할지라도 나도 변하고 있을 것이다(확실한 것은, 노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쉼을 모르는 자연처럼 나도 움직이고 있다.
이왕 움직일 거라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편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시골길은 '적막'이 무엇인지를 체감하게 했다.
적막은 적잖은 공포의 원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적막을 깨트리는 타인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만 적막이 이어지면 외로움,
나아가 공포에 휩싸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온 몸에 열기를 안고 집에 도착한 후, 또 다시 열기 가득한 물로 샤워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지었던 여름날.
나는 올해 여름,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선사한 스승은 자연이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자신의 시 '소풍(The Excursion)'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알게 되리.
좇지 않고, 갈구하지 않으면
그 심오한 깊이에 가 닿으리."
워즈워스가 말하는 '심오한 깊이'에까지 다다르지 못했겠지만,
나는 시골길 걷기를 통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배웠다.
- 2016.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