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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림



때때로 일몰 장면이나 평범한 경치, 푸른 초원, 혹은 어린 고사리가 어느 순간 귀가 멍멍하고 어지러울 만큼 강렬한 환희와 전율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지 않는가? 위대한 힘은 느닷없이 임한다. 잠시 육신화한 아름다움이 신성한 존재라는 걸 드러낸다. 이어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아름다움에 자신을 내맡겨버린다. 아름다움이 이끄는 대로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잡아끄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우리는 그곳에 갈 수 없다.


- 책 <어느 인문학자의 걷기예찬> p. 102




일몰 장면에 취한 때의 기억을 끄집어내보겠다.

2015년 6월이다. 호미곶을 찾았던 때다.

수많은 사람들이 '상생의 손' 앞을 메우고 있을 때,

나와 친구는 그 반대로 향했다.

인적이 드문, 해안가 끝.

그곳에는 낚시꾼들이 있었다.

나는 해안가를 들를 때면, 꼭 끝을 구경하는 습관이 있다.

그곳의 풍경은, 중심과는 또다른 멋이 있다.

그곳은 자연의 혜택을 더 받는 듯한 특유의 개성이 있다.

다른 곳들보다, 햇빛과 바람의 사랑을 더 받는 듯한 느낌이랄까.


상생의 손의 반대편 해안가 끝에서도 낚시군 세 명이 방파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낚시를 즐기는 모습과, 자연의 선물을 온 몸으로 즐겼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선선했다.

시원한 바람을 온 몸 가득 받아들였고, 잔잔하고 규칙적인 흐름을 반복하는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람과 물결의 움직임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흐름을 느끼면서 감정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2016년 6월, 호미곶 일대. 방파제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



우리는,

한 장소에 앉아 세 시간 가량 떠날 수 없었다.

그 풍경의 황홀함과 함께 그 아름다움을 만끽했다는 행복에 취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어느 인문학자의 걷기예찬>의 인용문 '거부할 수 없는 충동에 휩싸여 아름다움에 자신을 내맡겨버린다. 아름다움이 이끄는 대로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잡아끄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우리는 그곳에 갈 수 없다'처럼, 아름다운 풍경에 우리는 자신을 내맡겨버린 것이다. 황홀경에 빠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다다를 수 없었기에 한 장소에 앉아 변화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황홀경에 더하여, 우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분위기 있는 음악을 들었다.

그날은, 아름다운 날들 중 특히 잊지 못할 날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감흥이 생생히 느껴진다.

아름다운 날을 추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연이라는 위대한 선물.

나는 이들을 늘 공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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