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은 달달한 감성과 성찰의 메시지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바다의 뚜껑> 역시 그러하다. 최근 개봉한 동명의 영화는 보지 못했으나, 감상 전 원작을 먼저 접하는 게 옳은 방법일지 모른다, 는 생각을 안고 독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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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조용한 시골 바다마을. 주인공 '마리'는,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에 내려와 빙수 가게를 오픈한다. 누구보다 빙수를 좋아했던 그녀는, 오키나와의 한 마을에서 먹었던 빙수에 매료돼 가게 오픈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다. 마리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빙수를 만들고, 그것을 먹어주는 손님들을 보며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 앞에 '하지메'가 나타난다. 그녀는 엄마 친구의 딸이다. 그런데 그녀의 외모에는 특이점이 있다. 얼굴의 반이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마리는 하지메를 처음 만났을 때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곧 마리는 하지메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사실 얼굴은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근원에 있는 것을 본다. 분위기와, 목소리, 그리고 냄새...... 그 전부를 감지한다.' '하지메는 그늘이 조금 있어도 곧바르고 강한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 입은 화상 탓에 하지메의 몸과 얼굴 오른쪽 절반에는 드문드문 까만 흉터가 남아 있었다.' '일단 겉모습에 익숙해지고 나자, 하지메의 분위기는 마치 히비스커스 꽃에 맺힌 투명한 이슬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메에 대한 마리의 심경 변화다.


마리의 빙수 가게는 두 평 남짓한 작은 규모다. 메뉴도 '사탕수수 빙수' '감귤 빙수' '패션푸르트 빙수' '단팥 빙수'와 캔맥주, 보리차, 에스프레소가 전부다. 오키나와에서 단돈 200엔으로 먹었떤 단칸과 패션푸르트의 생즙을 끼얹은 달콤 새콤한 빙수를 평온하고 조그만 해변에서 먹었던 추억 그대로를 고향으로 가져온 마리는, 그렇게 매일을 소박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하지메가 마리의 고향을 찾은 이유는, 하지메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산을 노리는 친척들의 욕심에 못 이겨 한적한 바다마을을 찾게 된 것이다. 힐링이 필요했던 그녀에게 마리는 힘이 되어준다. 동시에 마리도 하지메와 함께 지내면서 많은 도움을 얻는다. 마리는 하지메에게 마을 곳곳을 소개해주고, 하지메는 마리의 빙수 가게 일을 도와주며 더 가까워진다.


산과 바다도 예전 같지 않고, 소싯적 추억들의 많은 부분도 사라졌다며 한탄하는 마리다. '고향에는 추억이 없었다. 추억마저 짓밞힌 느낌. 돈 때문에. 애정 없이 뿌려진 돈 탓에, 이 동네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내가 아는 소중한 것들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왠지 외톨이가 된 느낌에, 우주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나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향수병 같은 심정이, 마치 실연한 사람처럼 몇 번이나 뭉클하게 끓어올랐다.'


돈은 필요하지만, 넘칠 만큼 많은 필요는 없다. 과욕의 결과는 곧 상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마리의 고향에 투여된 돈이 그녀의 추억과 산, 바다를 앗아간 것처럼 말이다. "바다와 산이 매일 매일 모습을 바꾸는 원더랜드인가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는 것. 때가 되면 변하는 계절도 멋진 기후도 이 두 손에 다 거머쥘 수 없을 만큼 풍성했어. 그리고 아무리 싫은 사람에게도 저녁노을과 태풍이 지나간 후의 하늘이 고루 아름다운 걸 뿌려 주었어. 상상이 안 될 만큼 아름다운 날도 1년에 몇 번은 있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바다와 하늘의 색이 너무 황홀해서 모두들 무언가를 선물받은, 그런 기분이 들곤 했지."


이 사라져가는 것들처럼, 마리와 하지메의 이별 시간도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면, 이별이 이렇게 슬플 줄 알았다면, 이런 여름은 대체 왜 있었을까. 그렇게 가슴은 제멋대로 가라앉아만 갔다.'


마리와 하지메는, 짧지만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하지메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 인형 만들기를 하겠다고 마리에게 약속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마리의 빙수 가게를 돕겠다고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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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마리와 하지메의 우정담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잊어가는 소중한 것들을 상기시킨다. 사람 간의 이별도 경험하지만, 우리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자연도 잃어가고 있다. 함께 어울렸던 모든 것들에 대한 마리의 초상을 통해, 나 역시 많은 생각에 빠지게 됐다. 더불어, 하지메의 긍정적인 사고와 과욕 없는 태도 역시 내게 큰 힘이 되어줬다. 잃은 것들이 많지만, 마리와 하지메는 서로를 만나 채워나간 것들이 많아졌다. 우정 뿐만 아니라, 서로의 꿈을 지지해주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그녀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조만간, 영화를 통해 바다마을의 한적함과 마리, 하지메의 우정을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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