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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마리아>


영화 <사마리아>의 첫 시퀀스는 아버지가 딸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딸 여진은,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살고 있는 상태이다. 여진의 매춘을 알기 전까지,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진의 매춘 사실을 알게 된 후, 그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만다.


여진이 매춘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구 재영과 유럽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여진은 매춘 대상에게 연락을 취하고 재영은 섹스를 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매춘을 하면서도 여진은 그것을 '불결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재영의 생각은 다르다. 매춘 후 여진은 항상 재영의 몸을 깨끗이 씻겨주는 데 반해, 매춘 상대와 가까이 지내려는 재영은 매춘에 대해 '더럽지 않아'라고 말한다. 심지어 재영은, 여진에게 자신을 '바수밀다'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바수밀다는 옛 창녀의 이름이다. 그녀와 섹스를 한 남자들은 모두 불교 신자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재영은 섹스를 통해 외로운 남자들을 구원하고 위로하는, 변형된 성녀라 볼 수 있다. 이렇게 감독은, 여성의 분열된 일부인 창녀라는 캐릭터를 통해 남성의 어머니이자 구원자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경찰에게 매춘이 발각되고 재영은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게 된다. 재영의 죽음 이후, 여진은 그녀를 대신해, 섹스를 했던 남자들을 찾아가 다시 섹스를 하고 돈을 돌려준다. 섹스를 불결하게 여겼던 여진의 내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럼으로써 여진은, 섹스가 더 이상 더러운 것이 아님을 자각, 경험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은 다르다. 딸의 매춘 행위를 반길 리 없는 그는, 매춘 대상을 괴롭히고 죽이는 등 범죄자가 된다. 그 후, 아버지는 여진과 함께 여행을 제안한다. 여행지에서 아버지는 여진에게 스스로 운전해볼 것을 제안하고, 여진은 받아들인다. 운전 전, 여진은 악몽을 꾼다. 악몽은, 자신의 매춘에 대한 죄책감이자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상징이다. 한편, 운전은 성인으로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권리, 즉 주체성을 상징한다. 여진은, 서툴지만 자신이 운전대(의지)를 잡고 운전(길을 찾아나감)을 한다. 운전은, 작게 보면 성에 대한, 크게 보면 삶에 대한 의지를 상징한다. 여진의 운전 가이드를 위해, 아버지가 놓아둔 돌들은 롱 쇼트에서 비춰졌을 때, 남자의 성기 형태를 띤다. 여진은 그 사이를 오가며 성과 자아에 대한 주체성을 다져나간다. 아버지가 여진에게 들려줬던 '썩은 나무의 예수상에서 싹이 나온 기적'의 이야기처럼, 여진은 과거를 딛고 좋은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


영화에는 가해지와 피해자, 창녀와 성녀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는, 김기덕 감독이 영화를 통해 줄곧 표현해오던 작가성이다. 영화 속 장치에는 전작들에서 보여지던 것들이 그대로 이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여름 편에서 소년과 소녀가 첫 경험을 가졌던 배가 보이고, 여진과 재영이라는 두 캐릭터는 <파란 대문> 속 혜미와 진아와 닮았다.


<사마리아>의 영화 포스터에 쓰여진 문구는, 감독의 의도를 명징하게 표현하고 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이 소녀에게 돌을 던지라'. 비록 직접적인 매춘이나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더라도, 영화 속 소녀들에게 쉽게 돌을 던지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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