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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장전>


홍상수의 스토리텔링은 비선형적이고 무질서해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엄격하고도 단단한 구조가 있다. 그의 영화는 몇 개의 에피소드들 안에서 복수의 인물들이 얽히고설켜있다. 내러티브의 선형성을 거부하는 그는, 영화 속 한 캐릭터에 관객들을 집중시키고 관객이 그가 되는 상황을 꾀한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을 반복 등장시키면서 딜레마에 빠트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내러티브를 시간과 기억, 기억의 오류, 거짓, 의미의 가변 등을 체험하게 된다. 감독은 "너무 쉽게 정리된 삶에 대해 저항하겠다"고 늘 말해왔던 것처럼, 그것을 실행한다.


또 하나 홍상수 감독 영화의 결말은 완결되지 않는다. 서사적 완결성과 논리적 체계화를 거부한다. 그러나 그의 감춰진 구조는 치밀하고도 계획적이다. 관습화된 내레이션, 습관적인 인지 작용, 그로부터 파생되는 오류를 보여주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즉, 비정형화를 위한 '전략'이 있다는 뜻이다.


그의 여섯 번째 영화 <극장전> 역시, 비선형적이지만 결국은 완벽한 전략을 통해 완성됐음을 알 수 있다. 극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이 영화는, 극장 안팎의 인물이 동일선상에 놓여있다는 재미있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실과 영화의 모방'이 <극장전>의 소재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상원의 이야기에 대해, '영화 밖' 동수는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흔히들, 영화가 현실을 모방한다고 말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것이 홍상수가 이번 영화에서 말하려는 주제다. 영화 속 상원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는 동수. 만약 영화 밖에서 영화 속 주인공인 영실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는 그렇게(상원이 자신이라고) 생각했을까? 동수는 영화 밖 로맨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영화를 모방했다고 볼 수 있다.


현실과 영화를 오가는 동수의 행동을 통해, 우리는 그것들의 경계가 무너진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실과 환상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에서 그 둘은 공존한다. 영화 안팎의 에피소드 중 어떤 것이 환상이고 실체일까? 어떤 에피소드가 먼저 일어난 것일까? 정답은 없다. 여기에서 홍상수식 미완결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된 삶에 저항하겠다던 홍상수식 결말 때문에, 우리는 극장을 벗어나도 극장 속 에피소드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될 것이다. 동수의 마지막 대사처럼 말이다.


'이제 생각을 해야겠다. 정말로 생각이 중요한 거 같아. 끝까지 생각하면 뭐든지 고칠 수 있어. 담배도 끊을 수 있어. 생각을 더 해야 돼.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도록'





'영화가 현실을 모방한다'는 말에 저항하는 홍상수는, '영화를 모방하는 현실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관념이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 꿈꾸고 다짐하느냐에 따라 현실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동수가 그의 이상형인 영실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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