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결혼의 행복>

결혼의 '현실'에 대하여

부모를 여읜 열일곱 살의 마샤는, 서른여덟 살의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진다. 세르게이는 아버지와 나이 차가 있는 친구다. 마샤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한 세르게이의 따듯한 태도에 반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십대 소녀가 삼심대 남자의 연륜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에 더할 나위 없다. 세르게이 역시 마샤를 사랑한다. '청포도 같은'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는 차마 직접적으로 내색하지 못한다. 표면적인 나이차 뿐만 아니라, 자라온 환경과 경험의 정도, 가치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더라도 결코 결혼으로까지 이뤄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알기에 세르게이는 마샤를 향한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둘은 서로의 뜨거운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의 화자는 마샤다. 따라서 마샤의 내면이 상대적으로 진솔하게 드러난다. 어느날 마샤는, 세르게이가 몰라 읊조리는 단어를 몰래(하지만 똑똑히) 듣게 된다. 사실 마샤는, 이 감정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세르게이가 자신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것 같지만, 확실치 않은 그런 감정을 똑똑히 확인하게 된 후, 마샤는 세르게이와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그렇다면, 결혼 전후를 두고 마샤의 감정 변화를 살펴 보자. 결혼 전 세르게이를 향한 마샤의 감정은 자신의 또래는 갖지 못할 연륜에 대한 존경에 가깝다. 누군가를 존경하게 되면, 대상을 닮고 싶어하는 감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마샤의 행동이 그랬다. '그는 나의 습관이나 취향의 대부분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눈썹을 찌푸리거나 눈짓으로 내색했고, 내가 딱하다는 듯 무시하는 표정을 짓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좋아하지 않기 시작했다. (중략) 그의 생각과 감정이 어느 순간 내 것인 듯 되어 버렸고, 그렇게 내 삶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중략) 나에게 있어서 독서는 단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주요한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기 위해서였고, 또 그가 책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었다.' 마샤는 자신의 취향이나 습관마저 포기하면서 세르게이에 자신을 편입시키려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결혼 이후 마샤의 감정은 변화한다. 물론, 결혼 직후(신혼 시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감을 느끼는 그녀다. 하지만, 사교계에 몸담기 시작하고 거기에 흥미를 느끼면서 거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사실, 이미 흥미를 잃은) 세르게이와의 가치관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새로운 경험은 설렘과 흥미를 유발시키게 마련인데, 마샤가 사교계에 향한 첫 감정이 그런 것이었다. 어쩌면, 세르게이에 향한 첫 감정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호기심과 열정 같은 감정 말이다. 세르게이에 향한 열정이 사교계로 옮겨진 것이다. 따라서 둘의 관계는 시들해진다. 결혼 생활의 위기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샤의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무를 진 듯한 무게감이 짓눌린 현실을 못마땅해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마샤가 사교계에서 알게 된 한 남자와의 불륜을 저지른 것이다. 결혼 생활에 대한 위태로움과 마샤의 내면이 절정에 이른 시기다. 사교계의 피폐함에 중독왜 불순한 행위까지 한 자신 대한 경멸과 반성, 세르게이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인 마샤는 그에게 이 사건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사과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실행하지 못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불륜은 배우자에게 허심탄회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아닐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생각에 불과할 수 있다. 오히려 마샤가 고백하지 않음으로써 깨질 수 있었던가정 생활을 지켜낼 수 있었다. 때로는 감추는 것이 미덕일 때도 있다. 물론, 마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만약 자신이 이같은 상황의 주인공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난 애초에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을 테고 저지른 적 없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비밀은 나쁜 것이라는 보편적인 관념이지만, 최악의 상황으로깢 치닫지 않기 위한 미연의 방지(비밀)는 오히려 현명한 판단일 수 있다. 어찌됐든, 마샤의 판단과 행동에 의해 결혼 생활은 다시 자리잡힐 수 있게 됐으니까. 부부 관계도 이전보다 더 좋아졌으니까.


마샤와 세르게이의 결혼 생활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기대나 허무맹랑한 환상이 아닌, 현실을 인정하고 거기에 만족하는 태도에 있다. 세르게이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뭔가를 기대하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던 때가 있었어요. 행복한 밤들이었지! 당시에는 미래가 창창했는데, 지금은 다 지나가 버린 일이 되었네. 그래도 지금은 내가 가진 것들에 만족하고 행복해요."


<결혼의 행복>은 '현실적인 소설'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보장할 수 없는 로맨스에 대한 찬양이 아닌, 예기치 못한 경험들과 그에 따른 감정 변화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오히려 이러한 현실적인 결혼 생활을 보여줬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실질적인 팁을 줄 수 있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존속 기간과 관계의 변화에 따라 사랑의 형태는 변하게 마련이다. <결혼의 행복>을 다른 제목으로 바꿔보라고 제안한다면, 필자는 '결혼의 현실'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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