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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레이트 뷰티>

인간의 유한성이 건넨 삶의 진리

시간은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흐른다. 한 해 두 해가 지날수록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이왕 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을 거라면 여생을 더 치열하게 살아가야 함이 마땅하지만, 그와 반대로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소심해지기 일쑤다. 더 애석한 것은, 과거에 연연하는 자신을 만날 때다. 


영화 <그레이트 뷰티>는 세 차례 이상 관람했던,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올해로 65세가 된 주인공 젭은, 40년 전 단 한 권의 소설을 쓴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로마에서 상위 1%의 삶을 누리는 셀러브리티인 그는 물질적 풍요와 명성을 다 갖췄지만, 냉소적이며 회의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인간 혐오자'라 표현하며, 타락한 사회와 인간상을 비판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 역시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는 젭을 집요하게 뒤쫓는다. 향락적인 순간들을 보내지만, 젭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예술을 잘 모르는채 제멋에 취한 동료 작가를 공격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친구들에 비난의 목소리를 내비치는 그의 모습들은 화려함 이면의 연민 때문인지, 괜히 눈물 글썽이게 만든다. 그러던 어느날, 첫사랑의 남편이 찾아와 아내의 죽음을 알린다. 그때부터 젭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우리는 젭의 성찰을 통해 인간사를 엿볼 수 있다. 인간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 신*scene)들은 <그레이트 뷰티>의 예술성과 철학성을 더할 나위 없이 보여준다. 젭의 발걸음이 닿는 곳들에서 비춰지는 인간사의 위선과 오류들은 우리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가령,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자살한 아들, 성녀로 추앙받는 늙은 수녀가 물적 상품으로 전락하는 등의 모습들은 아이러니와 무의미의 극단을 보여준다.


우리는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매 시간을 어떻게든 살아가고는 있지만, 의미를 좇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할 수 없는 이들이 많을 것읻. 그저 살아지는대로 생각하고, 결과에 대해 포장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같은 환경에서 젭은 아름다움을 찾으려 애썼다.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말이다. 거짓에서 진실을, 죽음에서 삶을, 추함에서 아름다움을, 과거에서 현재를 말이다.


영화의 주 키워드는 '죽음'이다. 젭은 첫사랑의 죽음을 계기로 삶을 성찰한다. 쉼없이 달려왔지만, 의미와 목적 없이 달려온 인생의 허망함 앞에서 좌절과 우울을 겪는 젭. 그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과 목적의식을 다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젭이 찾은 삶의 진리는 무엇일까? 아이러니와 위선을 통해 젭이 깨달은 인생의 중요한 요소는 세월의 흐름에 대한 겸손함이다. 이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인 여인 라모나를 통해 깨달은 점이다. 시간은 흐르고 따라서 우리는 늙어간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이 진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삶의 유한함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다. 그래서 그 안에서 최대한 의미있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야만 한다. 그래서 젭은 다시 글을 쓴다. 삶의 아이러니와 위선, 허무 등을 경험한 그의 글은 분명 40년 전과는 다를 것이다. 경험과 의미가 잔뜩 배어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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