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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작된 도시>



시작은 게임 속 화면으로부터 출발한다. 게임에서 거침없이 팀을 이끄는 리더의 닉네임은 권대장. 그의 실체는 온라인 게임에 빠져사는 백수, 권유다. 그는 어느날, 잃어버린 휴대전화의 주인을 찾아주러 모텔을 찾게 되고 이후, 살인범으로 몰린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권유. 그는, 자신의 누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작된 도시>는 게임 안팎의 상황을 현실로 이어간다. 게임 속 캐릭터를 조종하는 권유처럼, 현실에서도 사건사고를 조작하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설정이다.


놀랍게도, 권유가 살인범으로 조작된 시간은 3분 16초다. 이는, 온라인 게임 한 회가 진행되는 시간보다도 짧다. 권유는, 자신이 이끄는 게임 팀원들의 도움으로 누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3분 16초 만에 조작된 캐릭터가 되어버린 무력한 권유. 이같은 끔찍한 현실. 과연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사건이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조작된 도시>만큼의 설계에 의한 피해자는 있을까 싶지만, 실제로 우리는 수많은 조작된 사건들을 접해왔다. 죄가 없음에도, 가난하고 무능력하다는 이유만으로 한순간에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피해자들을 미디어나 영화 속에서 많이 봐왔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국내 영화들에서는, 유독 이같은 맥락의 작품들이 많았다. <더 킹>, <재심> 등의 영화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진범은 소위 권력자라 불리는 이들이지만, 정작 범인으로 몰리는 이들은 빽 없고, 돈 없는 죄 없는 서민들이다.


분노할 일이다. 누군가는 이 분노할 일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진실을 밝혀지게 마련이며, 정의는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죄와 권력이 핏줄이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의와 선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겠다던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에 이기적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들을 해대고 있다. 황당하고 비통한 현실이다.


바꿔야 하고 바껴야 할 현실이다. 시국이 흉흉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영화들이 쏟아지는 이유는, 악행을 저지르는 그들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경고의 대변이 아닐까? <조작된 도시>는 사회성 상징으로 점철된 오락영화다. 사실 필자는, 영화 자체의 흥미도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같은 영화가 나오게 된 배경과 주제를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자를 조작하고 있다면, 중단하는 게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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