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경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중 몇몇은 "예전보다 글 좋아졌더라"며 오래간의 소원함을 흔들어 깨우곤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요즘 무슨 일 있었어? 글 좋아진 걸 보면 무슨 일을 겪었다는 뜻인데…"라고.

나는 때로는 거짓과 진실을 교묘히 섞으며 대답한다.

"뭐, 그러기도 했었고 아니기도 했었고…"


지인들의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은,

'사실, 기억이 없습니다'이다.

열애, 열병, 가족사, 직업병, 미래에 대한 고민.

이 고민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굳이 그 숱한 경험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추억하지 않는다.

물론, 당시의 경험과 감흥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적고 사진을 찍는 데 열을 올리기는 하지만.

그저, 단순한 기록일 뿐이다.

경험들이 내 글의 소재의 수와 비례하는 건 사실이지만, 영감의 원천인 것에는 틀림 없지만,

많은 경험이 곧 글재주를 드높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많을수록, 다양한 경험들에 젖었던 이들의 글은 '당연히' 좋아야만 할 것이다.

한데, 그렇지 않다.


나는 나의 글재주가 나아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저, 지금을 충실히 기억하는 기록자일 뿐이다

경험을 애써 꺼내어 글을 적지 않는다. 그 글을 적는 순간 혹은 그 때 스치는 과거로부터 오는 영감이 내 글을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나는 기억이 없다.

기록해둔, 몸이 기억해둔 자연스러운 추억들은 있을지언정

그것들을 굳이 굳이 다시 펴서 기록해내는 사람은 아니다.


물론 경험들에 감사하다.

그리고 나는 경험을 중요히 생각하고, 이것저것에 호기심도 많다.

나는 매 순간이 바쁘다. 지금을 기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글은 단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일 뿐이다.

'무슨 일'이라 불리는 경험들은 영감의 파편일 뿐이다.


지금의 기록은 지금의 생각이다.

고로, 다음 글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기록 중이다. 지금. 2017년 3월 27일 밤 9시 30분 경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당연히' 잊었을 때, 혹시나 꺼내어보고 싶은 추억이 될까봐 기록할 뿐이다.


그러니 제발, 오해도, 상상도 하지 말자.

그저, 예전보다 지금의 나 자체, 혹은 글재주가 성장한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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