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이게 만드는…
장건재 감독의 영화들은 '대사의 강점'이 있어서 자꾸만 '귀 기울이게 만드는' 매력, 아니 마력이 있다. 달리 말하면 말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건데, 그래서 좋다. 스크린 속 캐릭터들을 보는 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참여를 요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에서 감독이 선택한 캐릭터의 관계는 결혼 2년차 부부다. 아직 아이가 없고, 나름의 신혼을 만끽하는 중이다. 특별한 캐릭터들은 '절대' 아니다. 각자 일을 하고, 퇴근할 때면 서로를 기다리고 이후의 시간엔 소소하게 식사를 함께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긴다. 더운 날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으며 풍경에서 대화 소재를 발견하곤 거기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펼친다. 꽤 사이 좋은 부부다.
두 남녀의 로맨스도 소재이지만, 사실상 이 영화의 주 소재는 '결혼', 즉 '현실'이다. 그래서 이들은 또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물론, 그들의 오늘은 소소하지만 행복해보인다. 하지만, 임신과 그를 통해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게 될 미래에 대해 그들은 고민한다. 아이 갖는 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친정엄마, 주말근무를 시키면서도 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 등 외부로부터 부딪치는 것들이 그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게 만든다. 영화를 한 번 감상한 후, 그들의 대화에 집중해 한 번 더 연달아 '들었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면서 내 삶에 대해서도 진단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의 힘! 먹고 사는 '삶', 크게 다르지 않는 우리들의 삶. 특히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관념적으로 삶의 의례이기도 한 결혼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작품들은 많고 많다.
하지만, 장건재 감독의 영화들이 '더 와닿는 이유'는 시나리오의 힘이라 말하고 싶다. 대사들이 굉장히 일상적이며, 그 속에 숨어있는 어쭙잖은 농담들마저도 작품임을 의식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강렬한 매력이 있다. 극적이지 않아서 빠져들게 만드는, 심지어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장건재 감독의 영화. 특히, <잠 못 드는 밤>은 그 매력이 상당하다. 최근에 개봉해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한여름의 판타지아>보다도 '귀 기울이게 만드는 매력'은 이 영화가 더 많이 갖추지 않았나, 하고 판단해본다.
고민 많아서 잠 못 드는 그들, 나도 그 때가 오겠지? 애써 피하게 될까? 피할 수 없을 때가 오겠지? 이런 고민을 시작하게 되면 나 또한 잠 못 이루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