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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소통'과 '융합'의 코드 읽기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독일의 도리스 되리 감독의 2008년 작품이다. 한 노부부가 세상과의 끈을 놓으면서 두 사람이 서로를, 그리고 각자의 죽음을 경험하며 삶과 융합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영화는 독일에서 시작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영화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죽음과 삶,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물과 산 등의 대립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이렇게 대립된 것들을 보여주지만, 이들이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거울과 거울에 비치는 상과 같이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측면인 것을 언급한다. 극단적 대립은 서로를 포용하고 융합해가는 과정의 필수 소재가 된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거울과 물, 유리창에 비치는 영상 등을 자주 보여준다.


영화의 노부부 트루디와 루디는 각각 자신과 상대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과 조우한다. 둘은, 죽음에 대한 자각이 없다가 상대의 죽음을 맞딱드린 후 자신의 삶 정체성을 찾아간다. 죽음을 알지 못하는 루디는 여전히 생명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예기치 않던 죽음을 맞는 트루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 트루디의 죽음을 조우하게 된 루디는 아내의 생전 자취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다. 아내가 사랑했던 부토춤을 추는 일본소녀와 만나고 그곳에서의 여행을 치른 후 죽음을 맞이하는 루디. 일본 소녀는 루디와의 소통의 춤을 춘다. 삶과 죽음, 생명과 비생명의 세계는 단절된 관계가 아닌 소통하는 관계다.


영화의 원제인 <Kirschbluten>는 벚나무다. 이는 탯줄을 은유한다. 벚나무를 포함한 나무의 형상은 일반적으로 태반을 거꾸로 한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거꾸로 서 있는 나무는 오래 전부터 태궁, 자궁의 은유로 사용돼 왔다. 벚나무에 전화줄을 걸고 죽은 자와 소통하는 모습은 벚나무의 탯줄코드를 명확히 보여주는 신(scene)이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소통과 단절을 침착하게 다룬다. 독일의 영화이지만 꽤나 동양적인 이 작품은 상이한 문화권에서 탄생한 이국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소통'의 의미를 내포한다. 동서양의 만남이지만 그들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 자체가 '탯줄'의 모티프가 모두에게 동일하게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탯줄을 통한 연결. 삶과 죽음의 코드는 벚나무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부토춤을 추는 일본 소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그리고 죽은 루디와 소통하는 전화선을 이용하는 춤을 춘다. 다음으로, 거울, 거울 속에 반사된 모습, 수면에 비치는 모습, 창에 비친 모습 등을 보여줌으로써 연결과 융합 등을 말한다.



또한, '모태'의 은유도 등장한다. 우리 모두는 자궁으로 회귀한다. 영화에서 '물'이 등장하는 것은 삶과 죽음을 말한다. 바다 속으로 자살을 하면 다시 자궁 속에서 삶이 주어진다. 트루디와 루디, 그들 모두는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바다는 양수의 은유다. 루디가 죽을 때 푸른색 웃옷을 입는 것, 푸른 색 담요 속으로 들어가는 것 모두 '모태의 은유'에 해당한다.



이렇듯,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다양하게 반복, 그리고 변주되는 은유를 곳곳에 배치해둔다. 영화가 결말을 향해갈수록 태생의 모티프는 절정에 이르는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두터운 분장 또한 그와 같은 맥락이다. 꼭지점이 위로 향하는 삼각형은 기호학에서 남성, 반대 방향의 삼각형은 여성을 가리키는데, 루디가 이 것을 바라보는 (삼각형과 물에 비친 반대형 삼각형) 장면은 남과 녀의 대립된 관념의 융합-소통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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