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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비정전>



<아비정전>은 왕가위 감독 영화들 중 가장 함축적인 동시에 서정적인 작품이 아닐까.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비운의 주인공 '아비'의 삶을 다룬 이 영화는, 음울하고도 고독한 멜로드라마다.


늘 여자를 원하고 행하지만 진솔한 사랑은 거부하는 아비. 도박장 매표소에서 근무하는 수리진과 동거 중이던 그는, 갑작스레 수리진을 내쫓고 댄서 루루와의 사랑을 시작한다. 이 두 여인과의 사랑은 아비의 단편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비는, 여성의 시각에서는 바람둥이, 나쁜 놈이다. 하지만 아비가 이렇게까지 된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후, 지금의 양어미니에게 입양된 아비는 '진정한 모성애'를 느껴보지 못했다. 게다가 양어머니는 여러 남자를 전전하며 안정된 사랑을 누리지 못한다.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가 여성에게 진솔한 사랑을 줄 리 만무하다.


많은 이들이 <아비정전>의 명대사로 아비의 독백을 꼽는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아비의 감정과 삶은 '발 없는 새'처럼 이리저리 떠돈다. 어느 한 곳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한 그의 심신은, 연민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한편, 양어머니와의 사이가 나빠져 친어머니를 찾아 떠난 필리핀에서도 아비는 쓴 맛을 느끼고 돌아올 뿐이다. 그의 쓸쓸한 뒷모습은 다시 감상해도 슬펐다.


아비와 이별한 수리진과 루루 역시, 새로운 사랑을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 수리진은 아비의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난 경관과 호감을 갖게 되지만 짧은 만남에 그치고 만다. 루루는 아비를 잊지 못한 채 여전히 그를 그리워만 할 뿐이다.


왕가위의 영화들이 그렇듯 <아비정전> 역시, 쓸쓸함과 그리움의 정서가 지배한다. 한껏 사랑했지만 이별 후 남겨진 것들은 그리움 뿐이다. 결국 사랑이란 허무함을 남기기 위한 감정인 것인가! 왕가위의 영화들에서는 어느 커플 하나 '제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다. 모두가 스치고 그리워할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본능이 지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인간은 그렇게 맞지 않는 타이밍과 어긋나는 관계의 순환 속에서도 사랑을 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영화의 정서 만큼이나 우리에게는 그리운 대상이 있다. 바로, 아비 역을 맡은 장국영이다. 거짓말처럼 사라진, 진짜 '발 없는 새'와 같았던 그의 행보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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