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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영화<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영화<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냈다. '위트'를 제대로 발휘할 줄 아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그의 재능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클레어와 로라는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로라를 보자마자 '운명'을 느낀 클레어. 하지만 로라는 어린 아이와 남편(데이빗)을 두고 일찍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로라에게 그녀의 가정을 돌보겠다고 약속한 클레어는 어느날 데이빗의 집에 들르게 되고, 데이빗은 클레어에게 놀랄 만한 커밍아웃을 한다.



'의상도착증에 시달린다'고 고백한 데이빗은 클레어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은 후, 한결 편안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 그녀에게 절친한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데이빗의 낯선 고백으로 당황스러워하던 클레어는 점차 '위험한 놀이'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데이빗을 버지니아로 이름부르며 '은밀한 절친' 한 명을 만든다. 


여기에서 놀이는 '욕망'에 해당된다. 의상도착증에 대한 호기심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확대되고, 그 욕망이 현실에 동화될수록 클레어는 데이빗이 버지니아가 되어줄 것을 갈망한다. 사회적 편견과 정체성의 딜레마에 시달리는 데이빗 또한 남여의 성을 오가는 '놀이'를 즐긴다. 그가 생각했던 놀이는 결코 놀이에 그치지 않았다. 여성을 사랑하지만 그래서 더욱 여성의 옷에 매료됐다는 데이빗. 그리고 옷만이 아닌 정체성 자체가 여성이 아닐까 의심하는 클레어. 둘의 데이트 속에서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은 서스펜스를 능가한다.


한편, 데이빗이 버지니아가 될 때면 그의 모습에서 로라를 발견하게 되는 클레어는 자신이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성 정체성의 딜레마에 사로잡히게 된다. 과연 그녀는 로라를 우정으로 여긴 것일까, 그 이상의 사랑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것일까. 이 점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클레어의 모습도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남녀의 잣대가 허물어진다. 성 정체성을 떠나, 우리 모두에게는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모두가 공존하고 있다. 로라가 죽은 후, 의상도착증에 대한 갈망이 되살아났다고 고백한 데이빗은 부인이 죽은 후,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의 증가를 경험했을 가능성도 크다. '마모셋원숭이는 아비가 되면 짝에게 더 큰 충성심을 가지며 호르몬 변화가 많이 일어난다. 새로운 암컷의 냄새를 맡으면, 아비가 아닌 수컷들은 성적 흥분 반응을 보이고 테스토스테론이 급속히 증가하지만, 새끼가 있는 수컷은 새로운 암컷의 유혹에 관심이 없다. 자기 새끼의 냄새를 맡으면 아비의 테스토스테론은 몇 분 안에 갑자기 떨어지고, 에스트로겐 수치가 올라간다. (책 『사랑에 대한 모든 것』 p. 137에서(레오 보만스 엮음, 흐름출판)' 는 글에서 알 수 있듯, 호르몬은 그 상황과 공존하는 사람에 의해 수치가 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다.


한편, 동성과의 우정이 때론 사랑(사회적 시각에서의 남녀간의 그것)이 아닐까, 하는 점에 대해서도 재고하게 만드는 작품.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동성과의 우정을 순수한 우정으로만 단정짓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남녀가 느끼는 감정의)사랑'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개인은 성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프랑수아 오종의 신작<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개인의 금기와 욕망, 성 정체성을 다룸으로써 많은 사색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하지만 마냥 진지하거나 기피스럽게만 표현해내지 않는다. 속시원한 오종 식의 유머와 위트가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재미와 함께 성(性)이라는 다소 민감한 소재를 잘 버무려낸 오종의 천재성을 재발견할 수 있었던 작품.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색채를 흠씬 발견할 수 있었다. 소재와 선호하는 색채(등의 화면) 면에서 프랑수아 오종과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유사성을 느껴오곤 했지만 이번 영화 만큼 오종의 작품을 보면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작품들이 연상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2002)>와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의 일부가 오버랩되는 몇 신(scene)들이 있었다. 성(性)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의미에서는 영화<쓰리(톰 티크베어 연출, 2010)>가 연상되기도 했다.


부인과 친구의 죽음 이후에 깨닫게 된 성 정체성, 좀 더 근본적으로 접근하자면 모성(근원), 금기와 욕망 등을 다루는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감상 후 '대화거리가 많은' 작품이 될 것. 퀴어영화에 대해 이질감을 느껴왔던 관객들이라도 이번 작품은 감상해봐도 좋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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