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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해야하는 이유


사유는 독서 속에서, 독서를 통해 눈을 뜬다. 그리고 사유는 '엑스 니힐로'와 '솔로(solo)' 상태로, 그러니까 '무'에서 '혼자'만의 힘으로는 진정한 자신을 전개해나가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사유를 채우고 버리고 표현하기 위해 언제나 다른 사유, 즉 다른 사람들의 사유를 필요로 한다. 이 점은 인간 본성이 지닌 원초적 결함이자 위험요소로, 구루, 사유의 대가, 현대의 코치들은 항상 이러한 일차적 인간조건, 아니 인간조건의 왜곡된 착취라는 토양 위에서 번영을 누려왔다.


스스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사유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는 바로 독서 중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사유를 섭취하여 일단 우리 것으로 만든 후, 그 사유를 받아들이거나 내치거나 혹은 변화시킨다. 마치 생체조직이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듯, 우리의 사유도 우선 다른 사람들의 사유로부터 양분을 취하고, 그런 다음에 신진대사와 각자의 기호에 맞추는 과정을 거친다.

(중략)

이와 동시에 우리는 독서를 하면서 하나의 시대, 하나의 전통에 연결된다. 말하자면 독서를 통해, 거대한 사유의 원무 속으로 진입한다고 말할 수 있다.

(중략)

스스로 사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보편성을 가진 진리가 번쩍 솟아오르도록 '혼자' 사유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특정 텍스트나 그 저자를 신성시하는 태도와도 구분해야 한다.

(중략)

이렇듯,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셈이다.


- 책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 145~150쪽에서




우리가 독서를 해야만 하는 이유다.

독서는 틀에 박힌 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동시에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다른 세계 속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 혼자만의 세계에 함몰돼있었던 나를 구조해낸다.

한편, 책 속의 내용들은 '정답이 아니기에' 그것들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책과 작가(사상가)들은 종교와 종교인이 아니다. 맹신은 금물이다. 책은 사유를 위한 소스를 제공할 뿐이다. 독서는 그 소스를 찾기 위한 활동이다.


프루스트 역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저자의 지혜가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자신의 지혜가 시작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가 우리에게 대답을 주기를 희망한다. 저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우리가 욕망을 갖도록 하는 것인 데도 말이다."


독서는 소통과 대화의 일환이다. 편견과 자신만의 생각에 함몰돼 있는 개인에 대한 구조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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