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다. 여름 휴가지로 가장 각광받는 장소는 해변.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은 해변에서 읽기에 좋은 사유를 위한 책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휴가까지 가서 책을 읽어야 되냐'고. 하지만, 해변이 펼쳐진 휴가지에서라야 비로소 온전히 책을 읽고 철학(사유)하기가 가능하다.
저자 장 루이 시아니는 해변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철학을 논하는 동시에 저자의 에세이이기도 하다. 해변은 모든 억압과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바다와 땅의 경계(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탄생과 재탄생의 세계를 열어주는 곳)인 해변은, 일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파도에 휩쓸어버릴 수 있는 장소다. 그렇기에 해변의 휴가지는 거의 완벽하게 철학할 수 있는 곳이다.
'해변으로 가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분산을 멈춘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사색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 - 29쪽
이 책에는, 해변으로부터 떠나면서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휴가 여정에 따라 그에 걸맞은 앞선 철학자들과 저자의 사상이 나열된다. '떠난다=그곳에 도착한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현재에 산다, 옷을 벗는다 … 스스로에게 묻는다, 명상을 한다, 관조한다, 읽는다, 엽서를 쓴다, 걷는다 … 소통한다, 사랑한다 … 햇빛을 받는다, 돌아간다'. 목차들을 보면, 마치 독자 역시 휴가지 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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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철학에 대한 관념에서부터 해변에서의 철학이 유익한 이유들이 설명돼 있다.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갖는 철학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사랑에 대해선 그 누구의 교육도 필요 없었던 철학자들을 들어가며 철학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설파한다.
한편,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듯 사색하고 사유하는 것의 연장인 철학을 위한 최적의 장소인 해변은 진정한 철학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데에도 도움을 주는 장소다. 휴대폰과 라디오를 끈 우리 자신과 대면하게 되는 해변은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장소다. 따라서, 참이라 여겼던 것들과 거리를 유지하게 되는, 이전에 안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공간이다.
'각종 매체에 의해 날이면 날마다 바보가 되어가던 우리가, 마침내 그 어리석은 상태로부터 벗어난다.' - 49쪽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다. 무위. 한가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의 철학자 홉스에 의하면 "한가로움은 철학의 어머니"이다. '자발적 노예가 되기를 택한 우리에게 한가로움을 누리고 그 혜택을 맛볼 수 있을 시간이라고는 일 년 중 오직 이 때, 휴가철뿐이다.' - 53쪽
한편 휴가지에서의 우리는,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현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우리는 현재의 가치를 아는 나름의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많은 현자들은 '현재의(를 살아가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철학은 한다는 것은 벌거벗는 일이다. 철학적 훈련은 우리의 행동과 사유를 통해 우리 삶 전반으로 확산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집요한 환상과 습관, 편견을 떨쳐내야 한다. 즉 자기 자신, 곧 본능적인 반응이나 순간의 욕망에 역행해야 한다.' - 84쪽
우리를 기존의 관념,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부터 발가벗게 만들어주는 해변. 실제로 우리는 해변에서 옷을 벗는다. 그리고 그 위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이 모래성을 저자는 철학에 빗대 표현한다. 모래성을 쌓는 것처럼 자신을 찾는 것이 철학이라면서 말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도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철학을 하면서 삶에 대해 성찰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되돌아가고자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신을 분석하고,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을 다독거린다.' - 213쪽
발가벗게 만드는 곳에서 우리는 편견에 등의 사고, 즉 문화적 기성복을 벗어던진다. 자연과 가까이 하면서 그들의 가치를 깨닫는다. 마치 견유주의자들처럼 말이다.
이 외에도 책에서는 해변에서 우리가 접하고, 실행해야 할 것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명상, 독서, 타인과의 소통 등. 이러한 활동들이 소개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통을 강조'하는 저자의 생각들이었다. 많은 인문, 철학책에서는 혼자의 시간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함께'가 강조된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산파문을 해왔듯, 저자는 타인과의 대화와 어울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심지어, 개인의 활동이라 여겨왔던 명상과 독서, 글쓰기에서조차 말이다.
'소통 없는 명상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 - 129쪽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논증이나 자기기만에 능한 챔피언이 되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존재해야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198, 199쪽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든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든, 진정한 담론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야 나름의 일관성과 정확성, 연대감, 적절함을 검증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어쩌면 많은 철학자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휴가지에서 읽는 철학책>은 휴가지에서의 홀로의 경험을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철학의 완성은, 해변 등지에서 혼자만의 사색을 가진 후 일상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해변이 자신의 영역 안으로 진입하고 몰두, 탐구하기 위한 장소라면 일상은 공유의 장소라는 것이다. 결국 철학은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자신의 비판적 성찰 능력을 가동시키는 일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