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제목에서부터 마음을 빼앗긴 책이다. <씨네21> 기자이자 에세이스트인 이다혜 작가의 여행 에세이는 두 세 페이지 정도의 단편들로 구성돼 있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공감의 힘'을 머금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여행지에 대한 간략한 가이드는 물론이거니와 거기에 얽힌 사연과 개인의 생각을 담겨 있는 것 이상이다. 사실, 앞선 내용들은 여느 여행 에세이들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필자가 이 책에서 느꼈던 색다른 묘미는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들이 안내돼있다는 점과 여행지나 여행 목적에 걸맞은 책들이 소개에 있다.
저자는 끊임없이, 웬만해서는 쉴틈없이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몇 번은 휴가철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보낸 적도 있다고 고백하지만, 여행 중독자처럼 여행길에 오른 듯 하다. 주변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라고 물을 정도로 여행을 다녔다고 하니까. 필자 역시 여행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와 연관된 활동들도 했었다. 여행 가이드북의 감역도 했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예스24에서 여행 칼럼도 기고했었다. '떠남'. 그 자체가 선사하는 설렘 때문에 여행을 반복, 또 반복하는 중이다.
저자는 다양한 국가로의 여러차례 여행 덕으로 '열린 사고'를 갖게 됐다. 물론, 여행 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와 책 등이 그 사고의 확장 요소이기도 할 터. 그래서인지, 무조건 떠나는 것이 옳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여행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이들에겐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사실 필자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배낭여행이 유행하고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내용의 책들이 서점가를 장악한다 할지라도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혹은 개인의 사정(피치 못하게 비행기나 배를 타지 못하는 등)에 의해 해외여행이나 뱃여행 자체를 시도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여행은 판타지에 그칠 뿐이거나 최악의 활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들에게 여행을 권하는 건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하지만, 저자(그리고 필자)는 '떠날 것을 추천'한다. 시도하지 않고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엇이든 해보고 판단해야 옳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무언가를 '해보지 않을 자유'라든지 '무소유'나 '미니멀리즘'을 주장하는 저자들은 이미 그 반대의 것들을 해본 자들이다. '해봤더니'라는 경험치에 의해 비로소 위대한(베스트셀러로 각광받는) 책들이 등장하는 것이다(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이효리를 꼽겠다). 즉, 떠나지 않아도 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떠나본 사람이 하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는, 책의 제목대로 '떠남 그 자체의 맛'을 머금고 있다. 저자 역시 '출발'이라는 단어와 그것의 의미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어디론가 떠나면, 일상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던 낯선 광경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가치가 많아진다. 이는 확실하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정신 승리'라고 표현했다. 책의 마지막, 그러니까 끝맺음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여행의 무엇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지금 나의 대답은 이렇다. 공기가 다르고, 그 안에 있는 게 좋다. 그 나라의 음식 냄새, 사람들의 분위기, 역사와 문화자본 같은 모든 것들이 그냥 그 안에 서 있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느껴진다. 낯선 풍경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더 공부하고 싶어지고 호기심이 생기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정신적 건강을 도모하는 여행. '가난해도 우아해지는 정신 승리'라는 소제목의 글이 있는데, 제목 참 기막히게 적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여행길에서 가난과 마주할 때가 많다. 생경한 곳에서 한정된 예산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여행객들의 경우에는, 숙소에서 편의점 감자칩으로 허기를 달래야 할 경우도 있다. 게다가 여벌 옷이 부족해, 땀범벅인 옷을 다시 꺼내입어야 할 상황도 있다. 이는 그때 당시에는 곤욕일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깨우침을 얻을 때가 많다. 정신적 승리를 도모하는 여행의 맛! 아는 사람은 알 테다! 왜,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이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 알랭 드 보통도 <여행의 기술>에서 가난한 식사(호텔 방 냉장고에 들어 있는 파프리카 맛이 나는 감자칩 한 봉을 들고 잠자리에 들었던)를 고백한 바 있다.
어떠한 방식의 여행이든 떠나는 것은 옳다. 물론, 가난하고 고생이 많을수록 추억과 배움거리가 많아진다는 것에 동조하는 편(이것 역시 정답은 아니다)이지만, 어찌됐든 세상 구경(나는 여행을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은 살아있는 배움의 활동이다. 또한, 배움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여행의 장점은 다양하다. 스트레스 해소(힐링), 낯선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 등. 물론 여행의 단점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있다. 피로가 쌓이고 통장 잔고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여행에 중독된 사람들은 '기필코', '기어이' 떠난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여행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특히, 여성) 고개 끄덕이며 읽을 에세이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필자 역시 다음 떠날 목적지와 일정을 정해둔 상태다. 떠나기 전 읽으니 더 설렜다. 이번 여행에서는 저자가 추천한 책을 들고갈 예정이다. 모든 여행자들을 응원하며! 서평을 마친다.
책 속에서
내가 여행과 관련해서 유일하게 되뇌는 점이 있다면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을 받아들일 것." 오로지 그것을 더 여유 있게 경험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매일의 삶에서 예정대로 되지 않는 일은 내 힘으로 돌파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라면 더 부드럽고 가볍게, 가려고 한 식당이 문을 닫거나, 박물관 입장 줄이 너무 길어서 관람을 포기하거나, 화산재가 날아와서 비행기 운항이 취소되는 일을 통해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변수를 받아들인다. 아마도 나는, 평상시에 대충 '해치울'수 없는 것들을 해버리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