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산문집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를 읽는 중이다. 좋다. 작가의 울림이 내 가슴으로 파고들어온다는 걸 온전히 느끼며 읽는 중이다. 이 책에는 작가의 풍부한 경험담과 자각이 배어있다. 경험담 대부분은 여행에 초점이 맞춰져있는데, 그래서인지 '나도 당장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책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삶에서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매일매일이 단조로워 주위 세계가 무채색으로 보일 때,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 받아 심장이 무너질 때, 혹은 정신이 고갈되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렸을 때, 그때가 바로 자신의 퀘렌시아를 찾아야 할 때이다. 그곳에서 누구로부터도, 어떤 계산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 자유 영혼의 순간을 가져아 한다. 그것이 건강한 자아를 회복하는 길이다. - 17쪽
위 문단 속 핵심 단어는 '퀘렌시아'다. 정신적 안정과 휴식을 찾기 위한(피난처, 안식처) 공간. 이 공간은 저마다 다르다. 철저히 개인적이며, 찾아가는 방식(과정) 역시 제각기 다르다. 따라서 어떠한 방법이 좋다, 고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 자신만의 퀘렌시아는 찾는 편이 좋다는 점이다.
생각해봤다.
나만의 퀘렌시아는 어디일까. 류시화가 말하는 어떤 계산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 자유 영혼의 순간을 경험하게 만드는 곳은 어디일까. 나의 퀘렌시아는 자연 속이다. 바닷가나 높은 나무들이 빼곡한 숲길 속을 거닐 때면, 정신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휴식과 회복을 가능케 해주는 공간들이다.
장소로써의 의미로 쓰여졌지만, 나는 퀘렌시아를 행위에 대한 의미로도 확대 해석해봤다. 나는 무엇에 대한 '글을 쓰면서' 정신적 안정을, 기분의 정화를 느낀다. 경험을 중시하는 나는, 그 경험들을 어쩌면 쓰기 위해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도 많다. 쓰지 않으면 고심할 기회도 적어진다는 게 나의 세계관들 중 하나다. 쓰기 위한 삶. 나의 삶이다.
류시화는 많은 경험(특히 실패)을 통해 나(와 많은 독자)를 감동시키는 글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수많은 표현가(예술가, 작가, 사상가 등)들은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찾았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재능을 펼쳐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퀘렌시아를 찾는 이유는 개인의 목표 달성을 위한 절대적인 필요 때문이 아닐까. 나 같은 경우엔, 장시간의 뱃멀미를 고사하고라도 외딴 섬으로 향한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파도와 새 소리를 듣고, 물의 움직임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정화가 되더라는 것. 그리고, 정말, 기적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쓸거리가 생겨나더라. 많은 현자들이 그랬듯, '자연의 선물'이 위대하다는 걸 나 역시도 수차례 경험해왔다.
쓰기를 즐기는 삶. 나의 삶을 위한 퀘렌시아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공간이다. 타인과의 소통도 좋지만, 그 소통이 너무 잦은 탓에 때로는 그들을 떠나 자연과의 소통이 가능한 곳으로 향한다. 그 후, 내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정리하여 글로써 표현한다. 많은 이들이 읽고 공감해주면 더없이 기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쓴다. 꾸준히 쓴다. 쓰지 않으면 에너지가 반감된다. 쓰기 위해 경험하고,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삶의 질이 높아짐을 체감할 때.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나는 지금도 쓰고 있다(즐겁다). 매번 더 좋은 글을 위해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다른 경험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난 곧 떠날 것이다. 류시화가 자신의 퀘렌시아를 찾아 떠나야 할 때의 경우들 중 하나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이 단조로워 주위 세계가 무채색으로 보일 때. 요즘의 내 상태다. 곧 있을 나의 새로운 경험이 더 풍성한 나의 글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물론,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이 가장 중요하지만).
_2017.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