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레이디 맥베스>. 영화를 봤다면 충분히 고개 끄덕이겠지만, 이 영화는 '놀랍게도 실화'다. 70세 시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귀에 끓는 납을 부은 엽기적인 사건을 토대로 한 이야기. 영화 속 레이디 맥베스(캐서린)는 고작 열일곱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한 소녀다. 그렇게 젊은 며느리는 꽉 조인 코르셋처럼,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나날들을 보낸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권력욕이 있다. 시대 상황에 의해, 여왕들은 자신의 권력욕을 과시하기 위해 왕(남편)의 지위를 빌었다. 하여, 캐서린도 남편의 권력을 통해 내면의 권력욕을 실현(혹은, 악용)할 수 있었다.
캐서린은 주어진 임무, 그러니까 자식 생산에 집중해야만 했다. 하지만 중년에 가까운 남편은 강압적이기만 할 뿐, 본 임무(?)에 충실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임무마저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에, 캐서린의 주체성은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그녀에게 '자유를 만끽할' 기회가 찾아온다. 집안에서 운영하는 광산의 사고 때문에 시아버지와 남편이 집을 비우게 된 것이다. 그 사이, 하인들 중 한 명과 눈이 맞게 된 캐서린. 그때부터 캐서린의 일상은 거침없는 욕망들로 채워진다.
가문의 전통을 잇는, 혈연의 승계 때문에 희생된 여성. 이는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캐릭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같은 캐릭터와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많다. 그 과정에서 '한을 품은' 여자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이 국가를 초월한 비극적인 이야기들은,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가슴을 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비통한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어 준 작품이 바로 <레이디 맥베스>다. 섬뜩하고 엽기적인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캐서린은 욕망에 가장 충실하고도 대담한 인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욕망으로부터 시작된 끔찍한 사건들. 몸을 옥죄는 코르셋, 외출을 금지시키는 불구의 남편, 임무에 충실하라는 시아버지. 이 모든 수동적이고 갑갑한 상황들은 캐서린의 일탈을 향한 욕망을 부추겼다. 궁극적으로 캐서린의 강렬한 욕망은 오직 '사랑(성적 일탈)', 그 하나에 집중돼 있다. 연인과의 밀애를 위해 시아버지, 남편, 그리고 남편의 후견인까지 처단해나가는 캐서린. 결국 그녀는 그 이상의 섬뜩한 가해자가 되고 만다.
인간 본성, 욕망마저 과거에는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됐다. <레이디 맥베스>는 <마담 보바리>를 연상시킨다. 가장 기본적인 욕망의 실현조차 차단당했던 옛 여성들. 그녀들의 고충과 일탈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주목하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