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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재기발랄&사랑스러움 그 자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내겐 언제나 감동이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그의 작품들 중 '특히' 인상적이다. 재기발랄, 사랑스러움이 가득 배어있기 때문. '영화로써의 매력'을 잔뜩 품은 이 작품. 다시 봐도 좋았다.

영군은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주장한다. 이유는, 그녀의 할머니가 쥐-싸이보그였기 때문이다. 자신을 둘러싼 이들이 자신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영군. 다양한 차이점 때문에 괴로워하는 영군이 택한 '가시적인 다름의 방법'은 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할머니는 쥐-싸이보그였기에 하루종일 무라도 갉아먹지만, 인간-싸이보그인 영군은 무를 먹을 수 없다. 그래서 굶는다. 아니, 엄연히 말하면 굶는 것은 아니다. 영군은 기계의 밥인 전기에너지를 빨아들인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영군은 결국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인간-싸이보그라는 건 사실이 아닌 영군의 망상이기 때문이다.





정신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군의 밥 먹이기' 프로젝트(치료)에 가담한다. 여기에서 제목의 의미가 드러난다. 영군의 밥 먹이기 프로젝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순이 한 대사에서 말이다. "싸이보그지만 밥 먹어도 괜찮아". 그렇다. 싸이보그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영군은 밥을 먹어도 괜찮다. 아니, '당연히 먹어야만' 한다.

싸이보그이기 때문에 괜찮지 않은(해서는 안 될) 것들은 많다. 하지만 영군은, 그 금기(?)시 되는 것들을 행한다. 설렘도, 사랑도 경험하고, 결국 밥도 먹는다. 밥 먹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일순은, 영군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존재다. 일명 '훔치심'을 통해서 말이다. 마음을 훔친 대신 밥과 사랑을 영군에게 선사한 일순은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이다. 훔치심의 달인, 일순은 남다른 정신력의 소유자다. 소멸이 두려워 무엇이든 훔치는 일순. 아이러니한 것은, 일순은 자신(자아)이 비어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타인의 것으로 자신을 채운다. 영군에게서는 틀니를 훔쳤고, 그로 인해 영군의 발작을 보았다. 그리고는 영군을 이해했다.

결국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뻔한 멜로'는 아니다. 캐릭터와 배경 등에서의 실험 정신은 '영화의 특질'을 잘 활용한 예다. 어쩌면, 이 실험 정신 때문에 다소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은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가치' 있다. 쉽사리 보지 못할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망상만을 찬사하는 건 아니다. '밥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현실성을 직설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감상할 땐 '영화는 영화임'을 인지하고 새로운 세계를 맘껏 즐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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