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현택기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시인이다. 월 30만원의 수입으로, 그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시를 쓰며 살아가는 그.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아내 강순이 있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그런 삶에 택기는 큰 불만 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인다. 아마,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살아가던 택기에게 변화의 돌파구가 찾아온다. 집 앞에 새로 생긴 도넛 가게의 종업원 세윤을 만나면서부터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 택기는 도넛 가게에 자주 들르게 되고, 세윤과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택기와 강순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강순과는 달리, 택기는 성욕도, 정자 수도 부족하다. 수차례의 인공 수정을 거쳐 드디어 임신하게 된 강순. 하지만 이들 부부 사이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세윤에 대한 묘한,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된 택기는 자신이 처한 상황(심리)애 어리둥절하다. 자신이 남성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막막했기 때문이다. 더하여, 그는 기혼 남성이다. 게다가 아내는 갓 임신했다. 또한, 스스로의 생계를 건사하기에도 녹록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꺼번에 수많은 사건들과 마주하게 된 택기. 그를 시험에 들게 만든 사건들은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사실 택기는 세윤을 만나기 전, 세상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만' 그렸다. 그래서, 그의 시에 대한 혹평들도 많았다. 가족 내 큰 불화도, 아이도 없었던 택기. 어떻게 보면 그는 '단 한 번의 진실한 사랑도 못 해본' 격이다. 하지만 세윤을 만나면서부터 사랑에 눈을 뜨고, 아이가 생겨나면서 겪어야 할 가정 내 불화(딜레마)를 경험하면서 현실의 민낯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슬픔과 노여움 등이 밴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택기와 그의 시에 대한 타인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시란, 예술인 동시에 현실이기도 하다.
늦은 시기에 발견하게 된 정체성, 사랑으로 인해 택기의 세상을 향한 시선과 내면 깊숙한 심리 또한 변한다. 거칠고 투박하고, 아프고 슬픈 현실의 민낯들. 결국 택기는 그 경험들을 통해 '성장'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연상됐던 작품이 있다. 바로, 이창동 감독의 작품 <시(Poetry, 2010)>다. 마냥 아름답고 예쁜 사과 같은 것만이 시상(詩想)이 아니라는 것, 어두운 면 가득한 현실의 민낯의 경험이 오히려 시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징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쌉싸름한 한 남자의 인생 단면을 보여준 영화 <시인의 사랑>. 현실과 시(예술) 모두를 감상할 수 있었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