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처음 만난 2015년의 김지영 씨는 이상했다. 남편 정대현 씨의 장모님이기도, 그의 옛 연인이기도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김지영 씨는 주변 여성들 중 누군가가 되어 상대를 대하곤 했다. 왜 그렇게 됐을까. 대체 무엇이 김지영 씨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은 채, 책은 김지영 씨의 과거로 이동한다.
소싯적부터 연대기 순으로 김지영 씨의 삶을 보여주는 <82년생 김지영>은, 2015년의 김지영 씨의 정신이 비정상이 된 이유들을 짐작하게 만들어준다. 소설에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김지영 씨라는 인물과 그녀의 지난 삶들은 그다지 독특하지 않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하다. 물론, 누군가로 빙의돼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장면들은 헛웃음을 짓게 만드는 요소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누군가는 겪어봤을, 혹은 주변에서 익히 목격할 수 있었던 82년생 여자의 삶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필자는 김지영 씨와 비슷한 연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필자는 김지영 씨보다 다섯 살 아래다. 또한, 김지영 씨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꽤 비슷한 소싯적 삶을 보냈다. 김지영 씨의 삶을 들여다보던 중 자주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녀의 삶과 입장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십분 공감한다고는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김지영 씨의 삶이 한없이 슬펐다. 그녀와 그녀의 삶을 그러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이 슬펐다.
3인칭 시점에서 건조한 문체로 일괄함에도 필자의 감정이 투영돼 읽게 만든 탓에, 몇몇 표지 위에는 눈물 자국도 번져 있다. 김지영 씨의 눈물겨운 삶은, 시대의 벽이 무색할 정도로 연이어진다. 첫 사회생활이었던 국민학생 시절부터 짝의 장난 이상의 폭력에 시달려 심신의 피해자가 되어야 했고, 학원에서는 마음에도 없던 남학생의 접근으로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동아리 활동에서조차 여성성의 영향을 받아야만 했고, 직장에서 역시 김지영 씨는 남성들에 비해 적은 업무의 기회와 많은 성적 희롱을 감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들이 비단 김지영 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은 수많은 한국 여성들이 처한 환경과 그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입장들을 보여주는 보고서다.
1990년대까지 이어졌던 한국의 출생 성비 불균형 현상은, 남아 선호 사상이 빚어낸 결과다. 수적으로도 남성은 여성에 비해 강했고, 사회에서 바랐던 남성에 대한 선호도도 강했다. 이는, 학창시절을 지나 사회생활. 그러니까, 능력에 따라 보상받아 마땅한 자리에서까지 확연히 드러난다.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능력이 우수할지라도 기량을 펼칠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임금의 차이로까지 이어진다.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크며, 유리 천장 지수 역시 최하위 수준인 곳이 바로 한국이다.
이 같은 사회 구조가 형성된 원인들 중 가장 큰 주범이라 볼 수 있는 것은 남성들의 가치관이라 생각한다. 김지영 씨의 아버지가 김지영 씨에게 했던 말처럼 ‘여자는 얌전히 있다, 시집이나 가야’만 하는, 김지영 씨의 동아리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동아리 활동마저 ‘여자는 힘들어서 못하는 일’로 여겨진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다.
과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김지영 씨들이 존재해왔다. 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은 김지영 씨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경험해왔을 것이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감내해내야만 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 상황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싫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적응해야만 하는 수많은 김지영 씨들의 이야기다.
<82년생 김지영>은 픽션이 아닌 팩션(faction)이다. 누군가는 김지영 씨의 상황을 믿지 못하고, 혹은 믿지 않을 이들에게 반박할 수 없을 만한 데이터들이 적재적소에 소개된다. 즉, 이 소설은 한국 사회의 성비에 대한 실태 보고서에 다름 아니다.
필자는 소설을 읽는 내내 서글펐다. 필자의 삶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김지영 씨가 특별하지 않은 캐릭터였기에 더욱 그랬다. 애잔하고 서글펐다. 그리고 두려웠다. 나도 김지영 씨처럼 어느 순간 이상 증세를 보이는 날이 오면 어떡할까, 라는 괜한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희망으로 들어차야 마땅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필자 자신이 두렵기까지 했다.
김지영 씨와 달리, 필자는 아직 미혼이다. 김지영 씨에 비해서는 직장 내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잘 견뎌내고 있다. 적잖은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필자이지만, 마음 한 켠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불안이 가장 큰 요소는 결혼이다. 물론, 지인들은 결혼 이후에도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며 직장 생활을 성실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모든 여성들이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살아간다 하더라도 심신의 부담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만 할 것들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한들, 가사와 육아는 여성들의 몫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성의 사회활동과 권리가 신장했다 한들, 역할론에 대한 남녀의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은 실정이다. 이는, 비단 남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 역시 '가사, 육아는 자신들의 몫'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지영 씨는 혼인신고를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132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 엄마들은 '맘충'이라는 단어로 한데 묶인다. 맘(mom)과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 왜 육아만을 담당하는(담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엄마들은 벌레로 인식되는 것일까. 이는, 사회적 편견이 만들어낸 것이다.
소설 속에서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김지영 씨를 상담 중인 정신과 의사 역시, 퇴사를 앞둔 간호사를 대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이러한 가치관으로는, 법이나 제도가 바뀌어도 결코 남녀 불평등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남녀 모두 읽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명징하게 바라봐야 한다. 허구보다 사실에 가까운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들은 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준다. 여성은 아프고 괴롭지만 이 현실을 다시금 인지해야 하고, 남성은 ‘나는 아니야’식의 발뺌보다는 자신의 행동들을 돌아보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많은 남녀들의 가치관은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뿌리박힌 가치관들은 법과 제도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실정이다.
이 책이 더욱 안타까운 점은, 비단 김지영 씨와 그의 전 시대 여성만이 고초를 겪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지영 씨의 딸 정지원 역시 남성의 가치관과 남성 우월적 법,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고초를 겪어나갈 대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탄생부터 폭력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명확한 문제다. 성별에 상관없이 인간은 존재 자체만으로 위대하다. 일부가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82년생 김지영>은 현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해쳐나가야 할 과제를 던져주는 사회소설이다. 뚜렷한 타깃 없이 모두가 접해야 할 보고서다. 성별에 대한 피로와 공포 없이 모두가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그로부터 대우받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