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영화 <가을로>

<가을로>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했던 이를 잃게 된 남자의 로드무비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어떠한 과거였던 간에 회한과 슬픔이 뒤섞이기 마련이다.

현우는 민주의 죽음 이후, 민주의 일기장 속 장소들로 향한다. 살아생전, 민주가 현우와 함께 여행하고자 했던 곳들이다. 일기장을 따르는 현우의 내면에는 후회와 슬픔, 죄책감 등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타자의 상실로 인해 뚫려버린 공간은 다른 것들로 채워져야 마땅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구멍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다. 어떤 이의 죽음은, 그와의 추억들을 회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채워진다. 비단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과거와 결별한다. 사소한 문제들로 인해 친구와 지인을 잃고, 한때는 죽고 못 살던 연인과도 결별한다. 이후, 우리는 새로운 것, 사람, 물질 등으로 공란을 메우곤 하는데 영화 <가을로>는 이 사실을 관통하고 있다.

민주에 대한 현우의 애도 방식은, 민주가 희망했던 길을 걸으며 그녀를 기리는 것이다. 길을 걷는다(여행)는 건, 많은 깨달음을 선사하는 성장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또한, 메워야 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직접적인 창구이기도 하다. 현수는 여정에서의 새로움은 세진이다. 현우와 세진은 동행한다. 동행 과정에서 이들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중심에는 민주가 있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진리는 '세계는 이어져있다'는 점이다.

사실 <가을로>는 대중적 사랑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 2006년 가을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보는 내내 심장이 먹먹했고, 또한 차가웠다. 이후 나는 이 영화를 몇 차례 더 감상했는데 볼때마다 심장의 한기를 경험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별을 여행으로 극복하곤 했다(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낯선 것들을 경험하며 한동안 익숙했던 타인을 자연스럽게 잊고자 했다. 가히 효과적이었다. 여행지에서는 정신 없이 걸으며 익숙한 것들과 결별한다. 그렇게 나 자신을 과거와 분리시키는 거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는 남자가 있었다.
늘 해오던 이별 대처법을 행했음에도 심장은커녕, 뇌리에서도 빠져나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오히려 걷고 걸을수록 그의 생각이 짙어졌다. 그러면서 느꼈다.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했었다는 것을. 나름의 강력 대처법이라 여기고 행해왔던 방법조차 통하지 않게 만들 만큼 강렬한 사랑을 했었다는 걸, 나는 이별 이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로소, 뒤늦게.

이 경험 이후, 나는 <가을로>를 한 번 더 접했다.
실질적 이별 경험과 영화의 매력이 뒤섞인 탓인지 <가을로>를 이전보다 더 애정하게 됐다. 샛노란 은행, 붉은 단풍이 어우러진 가을의 아름다움과 극명히 대비되는 현우의 감정. 이 간극 때문에 영화는 더 깊은 슬픔을 지닌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장관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감상할 수 없다는 것. 상상만 해도 가슴 시리다. 곧 단풍 시즌이다. 올해 단풍은 꼭 사랑하는,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는 경험해봤을 첫사랑, 영화 <용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