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 마멀레이드 쿠키
내 인생에서 풀지 못한 대표적인 숙제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코바늘 뜨기와 운전.
코바늘 뜨기에 능숙한 친구들은 손가락을 반나절만 앞뒤로 휙휙 돌리면 수세미를 몇 개나 완성하던데, 나는 도통 그 원리를 모르겠다. 그런데도 겨울만 되면 실을 사들였고, 매번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뜨다 말았다. 결국 바늘에 실을 걸어둔 채로 뚤뚤 말아 장롱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두고는 무슨 미련이 남아서인지 결혼하고 두 번째 집으로 이사 올 때까지 그 실 뭉텅이를 들고 다니다가 2년 전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정리했다.
그리고, 운전. 자칭 ‘못 배운 게 한인 사람’인 우리 엄마는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언니와 나를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는 정말 온 힘을 다하셨는데, 운전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여자가 운전을 해야 한다.’ 우리 엄마는 꼭 뭘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는 그 앞에 ‘여자가’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 말엔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함께 장남인 삼촌의 그늘에 가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던 딸의 설움이 담겨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운전면허를 따긴 했으나 막상 운전대를 잡으려니 겁이 났고, 딱히 다닐만한 곳도 없어 자연스럽게 장롱면허가 되었다. 엄마는 그런 우리 자매를 몹시 못마땅해하셨는데, 손주들이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서운함까지 더해지셨는지 그 마음을 자주 표현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들은 내가 힘들게 면허를 따게 해 줬더니만 그러고들 있냐’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손주들이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눈앞에 아른거리고, 시골에서 온 햅쌀이며, 주말농장에서 직접 기른 채소, 김장김치까지 딸에게 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우리 엄마는 그럴 때마다 사위들이 일이 없는 날을 기다려야 했다. 급기야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운전만 잘하고 다닌다’는 다른 집 딸들과 비교까지 하며 내 속을 긁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내가 운전 연수를 받게 되었다고 하니 그 누구보다 엄마께서 정말 좋아하셨다. 이사 가기 전까지 두루의 유치원 통학을 해야 해서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이다.
운전 연수 첫날, 선생님께서는 대뜸 친정이 어디냐고 물으셨다. 여기서 친정 가는 길만 완벽하게 익히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그러면서 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럼 거기로 가죠’ 하시길래 얼떨결에 운전석에 앉아 친정으로 향했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어깨가 잔뜩 솟은 채로 핸들을 부여잡고 친정집 대문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엄마가 넨네(우리 집 강아지)를 안고 걸어 나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다! 우리 엄마예요!”
“하하 엄마까지 봤으니 됐네. 자, 핸들 풀고 액셀 붕”
일단 내 코가 석 자라 큰소리로 엄마를 부르지는 못했지만, 내가 운전해서 엄마 집에 왔다는 게 어찌나 뿌듯하던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나 아까 엄마가 넨네 안고 가는 거 봤다!”
“어머, 여기까지 왔어? 잘했네. 근데 너 당분간은 네 차에 우리 손주 태우지 마라.”
전화기를 붙들고 둘이 한참을 큰소리로 웃었다. 긴장이 풀리니 몹시 허기가 져서 바지 단추를 풀고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었다. 빈 그릇을 보니 단 게 확 당겼다. 두루가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아온 초콜릿을 연달아 입에 넣으며, 운전이 익숙해지고 나면 코바늘에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