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모양 쿠키
요가를 시작한 지 5개월 차, 걷는 것 말고도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평소 눈여겨보던 집 앞 요가원에 등록했다. 꼬박 한 달 동안은 매일 아침 새로운 부위에 근육통을 앓았다. ‘여긴 태어나서 정말 처음 아파 봐!’하는 곳도 있었다. 온몸 구석구석을 야무지게 찾아 돌아다니는 통증을 통해 내 몸에 이런 근육도 있었구나,라고 새삼 알게 된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근육통을 앓는 사이가 길어졌을 뿐 지금도 그 경험은 계속하고 있다.
나는 원래 내가 하는 일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가를 배우기 시작한 것에도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다시는 몸과 마음의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아픔이 온다 해도 유연하게 이겨내기 위해서’
2년 전 크리스마스이브,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정밀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병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입원을 앞두고 매일 밤 잠든 두루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처음으로 ‘나의 부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가족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내 머릿속엔 온통 내 자식 생각뿐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죽게 된다면, 나 없는 세상에 남겨질 두루를 상상하자 태어나서 가장 큰 슬픔을 느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자궁 적출 수술만으로 모든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아직 4개월마다 진행하는 정기검진 결과를 기다릴 때는 긴장되지만 암 진단을 받기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수술 후, 나는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집안을 돌보면서 제때 끼니를 챙겨 먹기 위해 노력했고 매일 1시간씩 걸었다. 잘 챙겨 먹다 보니 요리에 재미가 붙었고, 걷다 보니 길가에 핀 꽃과 햇빛을 받아 미모를 한껏 뽐내는 식물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요리책을 뒤져가며 만든 두루의 저녁 밥상을 사진으로 담아 SNS에 기록하기 시작했고, 친정에 가서 김장 김치 다음으로 야금야금 가져온 엄마의 화초로 주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살림도, 화초 가꾸기도, 운동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다 얼마 전, 두루가 잠든 사이 메모장에 적어두고 손이 많이 가서 벼르고 있던 반찬을 만들어 아침 밥상에 내놓았는데, 한 번 쓱 보고는 ‘식빵에 딸기잼 발라서 달걀이랑 먹고 싶었는데’하는 것이다. 순간 욱해서 상을 싹 물리고 식빵 봉투와 딸기잼을 거의 던지듯이 주고는 ‘네가 잼 알아서 발라 먹어’ 했다. 그랬더니 엄마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수저로 딸기잼을 퍼 올려 맛나게도 먹는 녀석.
아직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상처받는다. 우물쭈물 서서 내 눈치만 보고 있는 남편에게 등원 준비를 떠넘기고 요가원으로 향했다. 가서 씩씩거리며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친구에게 긴 문자가 와 있었다. 평소 말이 없는 친구인지라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겉옷을 여미는 것을 미루고 문자 먼저 읽었다. 책을 읽다가 내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일 땐 식물 돌보는 일도 내키지 않았는데, 나를 돌보자고 마음먹으니 식물까지 잘 키우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야 알겠다. 내가 자꾸만 뭔가를 키우고 싶어 하는 이유. 결국 나를 돌보고 싶어서구나.
단지 식물을 키우고 가꾸는 것만이 마음을 다잡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복잡하게 어질러진 곳을 정리 정돈하는 것, 먹을거리를 건강하게 챙기는 것, 짧게라도 매일 걷는 것, 이런 것들이 다 마음을 가꾸는 과정에 속할 것이다.
< 자기만의 (책)방, 이유미 지음 > 중에서
순간 울컥했다. 이 모든 게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지만 그 이면은 나를 단련하는 과정이기도 했기에 응원이 절실했던 것이다. 친구의 문자는 ‘너 정말 잘하고 있어’라는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거짓말처럼 기운이 솟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 콧노래까지 부르며 두루가 좋아하는 초콜릿으로 장식한 식빵 모양 쿠키를 구웠다. 하원 후 현관문에서부터 코를 킁킁거리며 맛있는 냄새가 난다는 두루에게 간식으로 주었더니 이렇게 말하는 녀석.
“세상에 이렇게 요리를 잘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엄마 나가고 아빠한테 엄청나게 교육을 받았구나...